[자유논평] 이세돌 9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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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논평] 이세돌 9단을 위하여
  • 김수아 기자
  • 승인 2016.03.09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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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코리아포스트 =김수아 기자]그날이 왔다. 이 칼럼은 대국이 시작된 9일에 쓴 것이니 결과는 모른다. 누가 이겼든 승부의 결과를 놓고 기술적, 문명적, 인류학적,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와 해석이 엄청나게 쏟아질 것이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데 체스는 30년, 퀴즈는 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은 체스와 급이 다르다. 바둑판에는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다는 10의 170제곱이라는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무궁무진이다. 그래서 바둑은 인공지능이 결코 넘보지 못할 인간지능의 정수이자 자존심으로 통했다.

승부에 대한 예측은 대체로 이세돌 9단의 우세 쪽으로 기울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승패를 가름하는 요인 중에 흥미로운 지적이 있었다. 기술보다는 ‘정신’ 이라는 요소가 누구에겐 승리로, 누구에겐 패배의 요인으로 거론됐다는 점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기계는 인간과 달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 이 9단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 할지라도 인간의 정신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점을 말했다.

바둑은 규칙과 경우의 수만으로 잘 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한 수 한 수에 대한 직관과 상상력이, 상대의 기(氣)나 반상(盤上)의 판세에 눌리지 않는 마음의 자세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알파고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이 9단이 아무리 천하고수라 해도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대국에선 흔들려서 패착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알파고는 긴장도 피로도 겁도 잠도 피와 눈물도 없는 기계다. 반면  바둑에 필요한 직관과 통찰은 결여돼 있다.

기계와 인간은 산업혁명 이래 끊임없이 여러 군데서 대립해 왔다. 기계는 인간의 밥벌이 영역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적 영역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앞으론 그 찬탈의 속도와 정도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모두들 생각한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선 2020년까지 사무 직종은 476만 개, 생산 직종은 161만 개 일자리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구체적 수치까지 발표됐다.

변호사, 의사, 증권애널리스트는 사라질지 모르며 보모, 요리사, 정원사, 배관공은 오래 살아남을 직업이라고 한다. 데이터나 패턴을 활용하는 전문직종은 컴퓨터의 빅데이터에 잠식될 수 있지만, 감정이나 감각, 경험적 정서나 고객을 상대하는 직종은 기계가 대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만들어낼 것이며 기계와의 공생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른바 인간과 기계의 ‘건곤일척’을 바라보면서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정신적 가치 영역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절감하게 된다. 그 중심은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나는 믿는다. 창의, 상상, 정서, 직관, 성찰, 통찰, 공감, 감동, 환희, 분노, 욕망, 소통, 고통, 절망 같은 복잡한 인간 내면의 움직임과 표현은 컴퓨터가 어쩔 수 없는, 오롯이 인간만의 본성이자 권리이다. 그런 것들을 다루는 문화예술만이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간을 정화하고 구원한다.

컴퓨터가 틀에 맞는 사건기사나 보도자료는 써줄 수 있어도 칼럼니스트나 시인, 소설가는 될 수 없다. 로봇이 배우의 섬세한 표정 연기를 대신해줄 수도 없다. 고흐의 자화상을 정확히 모사할 수는 있어도 또다른 자화상을 그려낼 수는 없다. 설사 뉴욕필의 수준에 비슷하게 운명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다 해도 결코 베토벤이 될 수는 없다.

이 대국이 예사롭지 않은 건 또한 서양 과학문명의 총아인 컴퓨터와 동양 정신문화의 상징인 바둑이 만났다는 데 있다. 인류 역사에서 동서양의 그 어떤 만남보다도 극적이며 상징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세돌 9단이 3선승으로 싱겁게 끝내주길 바란다. 200만 년을 벼려온 인간의 뜨거운 정신력은 불과 수십 년간 진화한 기계의 차가운 알고리즘이 넘볼 수 없는 가치임을 의연하게 보여주길 원한다. 설사 이 9단이 진다 하더라도 알파고 역시 인간의 창의성이 만든 산물이며 그걸 이용하는 주체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까 한다.

이 9단은 대국 전날 기자회견에서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둑의 가치는 계속 될 것이다. 이번 대국에서 인간의 그런 것들을 지켜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 9단의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글쓴이: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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