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부실, 관치·정치금융 폐해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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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 부실, 관치·정치금융 폐해 결정판
  • 김수아 기자
  • 승인 2016.05.2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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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수아 기자] STX조선해양이 3년 넘게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으면서 4조원대의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을 받고도 법정관리 수순에 돌입하면서 정치권의 개입을 포함한 관치금융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치금융, 정치금융 관행을 끊어내지 않으면 수조원대의 채권단 자금지원을 받은 대우조선해양[042660]도 STX조선해양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정부는 국책은행 인사 관여…국책은행은 관리기업에 낙하산

정부는 시장중심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채권은행인 국책은행 인사에 관여하고 개별 구조조정 사안에도 직간접으로 개입하면서도 정작 부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이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실패로 자신들이 부실해진 상황이다.

해운·조선업체 대출금만 산은 8조3천800억원, 수은 12조8천400억원 등 21조원 이상이다.

산은은 부실기업 지원 결과 자회사로 거느리게 된 회사가 370여개에 이른다. 산은은 이들 기업을 제대로 관리감독 하는 대신 퇴직 임원들을 낙하산 인사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관료들은 산은, 수은의 낙하산 인사 행태를 제대로 감독하는 대신 전직 장관을 수장으로 내려보내는 등 국책은행에 자신들의 낙하산을 보내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

최근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도 결국 그동안 키워온 부실을 해결하고자 하는 성격이 크지만 재정지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핑계로 한국은행에 부담을 떠넘기는 등 책임 회피 양상도 보이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책은행의 인사권은 물론 구조조정 시기와 규모 등에 있어 정부의 책임이 큰 데도 정부가 꼬리 자르기 식의 행태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STX조선 지원에 회의적이었던 채권단…당국 압박에 백기

금융당국은 국책은행 인사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구조조정 사안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거듭된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은 STX조선이 자율협약에 돌입하던 시기부터 채권단 내부에서도 있어 왔다.

2013년 4월 채권단이 STX조선을 자율협약 형태로 지원키로 결정했을 때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은 서별관회의에서 당국에 손실보전과 면책 보장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이를 보전하거나,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기업 특혜 논란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정부 관료들이 STX조선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우자 애초 지원불가 의사를 밝혔던 홍 전 회장은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면책조항'을 요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다.

산은은 자율협약에 따른 STX조선 지원이 무리한 방안인 것으로 이미 자체 판단을 내리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그 뒤 4조원 넘는 자금이 STX조선에 들어갔지만 재무상태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상황은 악화해갔다.

불과 4개월여 전인 올해 초에는 채권단이 애초 계획했던 지원액 중 미집행됐던 4천여억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KEB하나·신한은행 등 일반 시중은행 3곳은 지원 불가를 선언하고 채권에서 빠져나갔다.

채권단에서 빠지면 채권액을 청산가치에 근거해 쥐꼬리만큼만 보상받게 되지만 돈을 추가로 떼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산은,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등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은 채권단에 남아 자금지원을 강행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심을 고려한 조처일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 정치권 간섭에 산으로 가는 구조조정

정치권의 불필요한 간섭도 효율적인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됐다.

희생과 고통이 필요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이 조정되면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어 정치권의 개입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STX조선이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 대상이 된 것을 두고도 금융계에선 정치권의 압박이 있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자율협약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워크아웃은 도산위기에 몰린 기업이 대상이다. 당연히 구조조정 강도도 워크아웃이 세다.

지난해 초에는 국민은행이 STX조선해양 측에 320억원의 보증채무 이행을 요구하며 강제집행을 예고하자 안상수 창원시장이 은행 측에 상환유예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의 구조조정 간섭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여야 지도부는 지난 23일 조선소가 많은 거제를 방문해 노조원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갔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근로자들이 경영을 감시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에 대한 실업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같은 날 부산에서 열린 지역경제현안 간담회에서 구조조정과 관련, 부실 책임 규명과 전문가에 의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각 조선사 노조가 회사가 마련한 자구계획안을 거부하는 등 조선업 구조조정이 난항인 상황에서 각기 다른 발언으로 혼선을 줬고 이런 개입이 구조조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는 지적이 나왔다.

 

◇ "관치금융 지속하면 사태 되풀이…고리 끊고 책임소재 명확히 해야"

부실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둘러싼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개입은 더 부실을 키워 결국 금융사의 손실이나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관치금융과 정치권 개입의 고리를 끊으려면 현 금융감독 체계를 고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금의 기업 구조조정 체계는 정치권-금융위-금융감독원-국책은행-국책은행 관리대상 기업으로 꼬리를 물며 이어지면서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관치금융 구조 아래에서는 아무도 문제를 직시하고서 해결하려 들지 않고 자기 임기 동안 사안을 덮어두고 문제가 커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유인이 크다"며 "이런 고리를 끊지 않으면 STX조선 사례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처럼 금융감독당국의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STX조선의 경우 지원결정 당시 홍 전 회장이 면책조항을 요구하는 대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하겠다고 버텼더라면 지금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원결정에 책임이 있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산은 회장이 모두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조정 시 의사결정에 관한 협의체를 제도화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며 "책임소재가 명확해지면 정치권이 로비를 하더라도 함부로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과 국책은행 주도의 현 구조조정 체계를 두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우려했다.

빈 교수는 "국책은행은 어차피 내 돈이 아니라 국가가 준 돈이라 생각해 정치적 결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며 "애당초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을 상대로 몇 십조씩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게 국제 기준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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