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JAL은 어떻게 파산의 수렁서 벗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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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JAL은 어떻게 파산의 수렁서 벗어났나
  • 피터조 기자
  • 승인 2016.07.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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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피터조 기자] 미국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GM, '일본의 날개' 일본항공(JAL)은 '파산'(또는 파산 위기)이라는 수렁에서 회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타성에 젖은 경영으로 '망조'가 들었던 두 기업은 수년간 껍데기를 벗는 고통을 거쳐 경쟁력을 회복, 양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위상을 거의 회복했다.

그 배경에는 노사간 협력, 사내의 관행과 업계 논리에서 자유로운 외부 사령탑 영입을 통한 구조 개혁이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 미국 자동차 메이커 GM 로고

 

◇노사협력으로 되살아난 GM = 2009년 6월 1일은 미국 제조업에 치욕적인 날이었다. 세계 경제 1위대국인 미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철옹성을 쌓았던 GM이 이날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했다.

1908년 설립된 GM은 뷰익과 오클랜드 등을 흡수하며 덩치를 불리다 1930년대 들어 포드를 누르고 미국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30%대에 달했고, 1979년에는 미국 내 근로자수가 61만8천 명에 이르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일본 자동차업체의 부상 속에서도 안이한 대응으로 경쟁력을 잃어간 GM은 수십 년간 쇠락의 길을 걷다 2008년에는 77년간 지켜온 세계 자동차업계 정상을 도요타에 내주기도 했다.

계속되는 경영난에 사업부문과 근로자 수를 축소해 나갔던 GM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채 급기야 2009년 6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GM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경영진과 노조의 합작품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매출감소와 고비용구조에 따른 유동성 위기였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노사가 방치하거나 오히려 조장한 근본 원인이 밑에 깔려 있었다.

경영진은 미국시장만을 고려한 중대형차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으며 자동차 생산 방식 혁신에도 실패했다. 회사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형차 시장을 무시했고, 경쟁사인 도요타에 비해 생산성과 품질이 떨어지는데도 생산방식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GM이 생산하는 자동차는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 많은 결함을 나타내 고객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노조는 과도한 임금과 복지비용을 요구하며 경영진을 압박했다. 금융위기 이전 GM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 제조업 평균의 두 배를 넘었으며, 직원에 대한 의료복지비도 경쟁사인 도요타보다 8배 가량 많았다.

이런 안일한 경영과 과도한 비용 구조가 지속하면서 GM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장기 성장동력을 잃었다. 1970년대부터 이미 GM이 시장점유율을 잃어갔지만 노사는 여전히 1등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과거의 영광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GM은 결국 미국 정부가 네 차례에 걸쳐 198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는데도 헤어날 수 없었다.

파산 보호 신청 이후 GM은 그 때서야 뼈를 깎는 경영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GM은 정부 주도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GM은 회사를 우량 자산 중심인 '굿 컴퍼니'와 구조조정 대상 부문을 모아 놓은 '배드 컴퍼니'로 나눴다. 이 과정에서 GM은 보유 브랜드를 8개에서 4개로 줄이고 공장도 통폐합했다.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를 통해 GM에 495억 달러(약 57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지분 60.8%를 인수했다.

유례없이 신속하게 자산 매각을 완료하고 40일 만에 파산보호에서 졸업해 탄생한 새로운 GM은 생산설비와 근로자수 감축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빠르게 이어갔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10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같은 해 기업공개를 통해 이미지를 개선시킨 후 2013년에는 정부의 구제금융에서도 벗어났다.

연간 930만대까지 올랐던 생산 대수가 600만대로 줄어들자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연비가 좋은 소형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개발에 주력했다.

실직의 공포에 내몰린 직원들도 노조를 중심으로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 회사를 살리자는 데 동의했다. 노조는 신입사원의 임금을 기존직원의 절반 정도인 시간당 14달러 선으로 낮췄고 해고 때 5년 평균임금의 95%를 6년동안 지급하는 제도도 폐지했다. 또 6년동안 파업을 자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경영진은 이에 부응해 해외 아웃소싱을 유예하고 경영이 정상화되면 해고자를 우선 고용하겠다고 보장했다. 이런 노사 협력의 결과는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면서 회사의 경쟁력을 키웠다.

지난해 GM이 전 세계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모두 984만대로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 이전 수준을 넘었다.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에 밀려 아직은 판매 순위가 3위에 그쳤지만 이미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1위를 탈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위인 도요타와 GM의 판매대수 차이가 31만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GM의 자존심 회복이 올해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GM의 몰락 과정에서 함께 무너져 내려 2013년 파산 상황까지 맞은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 역시 GM의 부활과 함께 서서히 되살아나 자동차 산업 메카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전혀 다른 업종서 '선장' 영입…'공기업 마인드' 탈피한 JAL= '하늘의 일본'으로 불린 일본항공(JAL)이 2010년 1월의 충격적인 파산을 극복한 것은 외부에서 수혈한 경영진을 통해 뿌리깊은 '공기업' 스타일에서 탈피했기에 가능했다.

JAL을 '준 국영기업'으로 취급한 자민당 정권은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 채산성 없는 지방 공항에 취항토록 압박하고 지방공항 유지 관리를 위해 공항사용료를 과도하게 징수했다.

1951년 설립이후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되던 JAL은 1987년 완전 민영화했지만 경영진이나 경영방식은 '관(官)' 체질을 벗지 못했다. 경영진에는 '낙하산' 인사가 투입됐고 경영실적에 관계없이 퇴직자들은 두둑한 연금을 챙기는 와중에 부실은 누적됐다. 결국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한 채 파산했다.

2010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당시 부채 규모가 2조 3천 억 엔. 난파한 'JAL'의 새 선장으로 당시 민주당 정권은 전자·정보기기 업체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을 세웠다.

JAL 홍보부는 지난 15일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대해 보내준 답변에서 파산했던 JAL이 이나모리 회장 체제에서 경쟁력을 회복한 최대 원동력으로 '구조조정'(인원 등의 삭감)과 '구조개혁'을 꼽았다.

이나모리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회장 재임중 적자노선을 중심으로 국제선 40%, 국내선 30%을 각각 줄이고 총 4만 8천명이던 인력을 3만 2천명으로 대폭 감축했다. 기재의 퇴역, 기종수 삭감, 수익성 있는 노선으로의 집중 등도 뒤따랐다.

자회사도 절반 가까이 매각했고 인건비를 20%, 퇴직연금을 30% 각각 줄였다.

구조개혁 측면에서는 '부문별 채산제도'와 'JAL 필로소피(철학)' 도입을 추진했다. 그것은 지금도 JAL 경영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고 JAL 홍보부는 밝혔다.

이나모리는 JAL의 '공기업 의식'을 깨기 위해 교세라에서 해온 '아메바 경영'을 접목했다.

아메바 경영은 기업을 10명 이하의 소집단(아메바)들로 재편해 각 집단마다 시간당 채산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시간당 채산의 목표치를 월간 및 연간으로 책정하고 각 부문별로 실시간 점검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과 매출 증가를 꾀했다.

편(便)마다 각각 수지를 내게 되면서, 자기 일만 충실히 하며 주어진 예산을 소화하면 그만이던 JAL 직원들의 마인드가 적극적으로 수지 개선에 나서는 쪽으로 변해갔다.

사내 유니폼 세탁소를 없애고 직원들이 직접 유니폼을 빨아 입기도 했고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쓰는 등의 경비 절감이 이뤄졌다. 또 예약이 넘치는 노선에 큰 항공기를, 드문 곳에는 작은 항공기를 투입하는 유연성도 생겼다.

이런 노력 끝에 JAL은 파산한 지 2년여 뒤 나온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결산에서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인 2천 49억 엔을 기록하며 2012년 9월 도쿄 증시에 재상장했고, 2014년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회사의 전면적인 수술이 사원들에게 받아들여진데는 이나모리의 '의식개혁' 노력이 있었다.

이나모리는 사업의 목적과 의미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강력한 열망을 마음에 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할 것, 매상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것 등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애썼다.

공항을 직접 찾아 다니며 조종사, 객실 승무원 등과 자주 대화하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영 철학을 교육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한다', '항상 겸허하고 솔직한 마음을 갖는다', '마음을 하나로 한다' 등 내용의 'JAL 필로소피'로 정착했다.

뻔하지만 잊혀져온 이런 '기본'의 공유가 있었기에 '아메바 경영'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JAL 관계자들은 단언한다. 철학과 비전의 공유가 있었기에 각 단위별 이익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개별 단위들이 다른 부문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나모리가 경영일선을 떠난 지금도 'JAL 필로소피'는 기업 경영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JAL 홍보부는 밝혔다.

▲ 작년 1월 14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GM 조립공장에서 근로자가 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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