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이케아 한국서만 '배짱'…규정 미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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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이케아 한국서만 '배짱'…규정 미비 탓
  • 김광수 기자
  • 승인 2016.07.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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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광수 기자] 어린이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서랍장을 판매 중인 가구업체 이케아(IKEA)와 배출가구 조작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폴크스바겐 등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서는 미국과 다른 리콜 규정을 적용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업체는 유독 한국에서 리콜에 소극적인 이유로 양국의 안전규정이 다르다는 점 등을 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케아는 전날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서랍장 안전조치 보완 요구를 통보받았지만, 판매중단 등 적극적인 수준의 리콜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 '말름 서랍장', 리콜 아닌 환불7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이케아에 말름(MALM) 제품이 진열돼 있다. 이케아는 말름 서랍장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에서 2천900만개, 캐나다에서 660만개의 제품을 리콜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가구를 벽에 고정하는 장치를 나눠주는 것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관계기관이 안전성 조사에 착수하자 환불 조치하기로 했다.

         

서랍장 자체에는 결함이 없고 한국 안전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케아코리아의 설명이다.

미국은 말름 서랍장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아이들이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속출하자 서랍장에 적용되는 임의 규정인 미국재료시험협회규격(ASTM) 일부를 손질했다.

ASTM F2057-14 규정은 지지대 등 다른 구조물 없이 서 있는 높이 60cm 이상의 어린이 서랍장과 75cm 이상의 성인 서랍장이 갖춰야 할 안전성(stability) 기준을 상세하게 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서랍장은 빈 서랍의 문을 다 열어 앞쪽으로 무게가 쏠리더라도 안전하게 서 있어야 한다.

물건이 들어 있거나 아이가 매달리는 등의 상황을 가정해 각 서랍에 약 50파운드(50±2파운드)의 납덩이나 쇳덩이를 얹었을 때도 엎어지지 않아야 한다. 미국 내 5세 어린이 95%는 몸무게가 50파운드(약 23kg) 이하인 점을 고려해 정한 기준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잇따른 사고 이후 정부 기구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직접 나서 이런 규정을 강화했고, 이케아와의 협의 끝에 새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서랍장의 리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아동용 가구가 국가통합인증(KC)을 받는 과정에서 한쪽으로 넘어질 위험이 있는지, 모서리가 너무 뾰족하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받는 것 외에 서랍장 안전성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리콜을 권고한 한국소비자원 또한 시정명령 '권고' 권한만 있을 뿐 이를 강제할 권한은 없어 후속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79개 모델에 대한 정부의 인증취소가 임박한 폴크스바겐 역시 국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에서 배상은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데다 문제 차량에 대한 리콜 조치도 기약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말 환경부에서 배출가스 조작을 확인한 폴크스바겐 디젤차의 리콜은 8개월여 가까이 지체되고 있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이 제출한 리콜 계획서에 대해 올해 1월과 3월, 6월에 세 차례에 걸쳐 불승인 조치를 내렸다.

특히 6월에 세 번째로 '퇴짜'를 놓을 때는 폴크스바겐이 리콜 대상 차량을 '임의조작'했음을 명기하지 않으면 리콜 계획 논의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폴크스바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객에 대한 배상을 확정한 미국에서는 유로5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임의설정하고 조작한 사실을 인정하는 문구를 배상 합의안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폴크스바겐은 "임의조작 여부는 법적으로 다퉈야 하는 사안인데 정부가 리콜 계획서 검토의 전제조건으로 '임의조작'을 명시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리콜이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상 문제를 놓고도 폴크스바겐은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며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배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폴크스바겐은 지난 6월 말 미국에서 차량 소유주들에게 1인당 최고 1만달러(약 1천16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확정 지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과 한국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 양국의 자동차 질소산화물(NOx) 배출 한도에 대한 규정이 다르고 ▲ 미국과 한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엔진 종류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문제 차량 소유주들은 "미국 피해자나 국내 피해자나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고의로 맞추지 않은 불법차량을 구매한 '사기 피해자'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며 미국 배상안을 국내에서 동일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검찰이 서류 변조를 확인했는데도 폴크스바겐이 조작 사실을 부인하며 행정소송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정부를 무시하고 시간을 질질 끌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법 제도가 약하니까 끝까지 버텨서 배상을 안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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