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여기, 전통의 부활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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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금, 여기, 전통의 부활을 위하여
  • 김정숙 기자
  • 승인 2016.12.24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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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정숙 기자]  한국 인구의 절반이 여자라면,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2천5백만이라는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지난 학기 여성학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서 여자로 산 시간이 5년이나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성학 수업에서 내가 만난 ‘한국 여성’은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낮은 임금과 여성들에게만 일어나는 무례(“○○씨, 커피 좀 타다줘”), 커리어를 잘 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지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압박 등 한국의 여자들은 많은 것들을 감내한다

. 그러나 여성이 처한 문제를 말하는 순간, 대화는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길로 향하곤 한다. 여성 문제의 언급이 ‘여성이 남성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와 같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성 문제의 언급은 극심한 경제난과 병역의 의무 등 남성들이 직면한 고통으로 되받아 쳐지기 일쑤이고, 종국에는 양성의 대립이라는 무의미한 논쟁만이 남는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힘드냐를 겨루는 이러한 논쟁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 심지어 일종의 대회로까지 여겨질 지경이다.

가히 반사적이라 할 만한 이러한 종류의 반응은 세상에 오직 두 가지의 성(性)밖에 없으며 이 둘이 아주 다르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젠더(gender)가 단 두 개로 고정되어 있다는 개념은 결코 그 역사가 길지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옳기는커녕 상대적으로 최근에 형성된 불안정한 개념에 가깝다.

기왕의 개념 대신 젠더를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조용한 내면의 목소리로, 긴 시간에 걸쳐 우리가 스스로 만들거나 적응하는 것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젠더에 대한 프레임을 바꿨을 때 모든 성의 문제는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미 한물 간 젠더 관념이 모두에게 압박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복을 입는 문화가 부활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여자는 치마를, 남자는 바지를 입었을 때에만 ‘적절한’ 한복 차림이라고 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에 매혹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전통 의상이 부활하기 위해 고정된 성 역할과 상류층의 예절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창의성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던 시절의 다양성을 부정한다. 기실, 역사체제에서 보여주지 않았을 뿐 실제로 한복이 일상복이던 시절에는 치마를 입는 남성, 바지를 입는 여성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0대 소녀들이 남자 아이들의 옷을 입고 모험을 떠났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오늘날의 인기 문학 작품이나 미디어 속에서도 소위 ‘적절하지 못한’ 옷차림의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 이런 사례들은 전통이 특정 틀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분홍색 옷을 입으라든가, 웃을 때는 입을 가리라든가 혹은 파스텔빛깔의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라는 등의 말을 듣는 오늘날의 소녀들을 고무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인물들이 있을까.

2년 전만 해도 서울 거리에서 한복을 입는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있다면 아마 결혼식에 가는 어머니들쯤. 약 10년 전에도 면으로 된 한복을 입는 어르신들이 있긴 했지만 그게 한복의 재기라고 불릴만한 건 아니었다. 만일 한복이 더 이상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사람들이 한복을 입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복의 부활은 오늘날의 패션과 유행을 바꾸고 다양한 스타일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한복을 갖고, 입고, 그들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통해 한복을 살려낸다. 전통이 되살아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된 전통으로서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문화에 맞추었을 때 가능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한국의 젊은 층이 일종의 표현 수단, 창의성과 탐구의 소재로 전통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케케묵고 먼지 쌓인 것으로만 여겨지던 전통을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전통은 창의성의 우물이다. 만일 전통이 오늘날에도 매력적이라면,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여자들에게 쓰개치마로 머리를 가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또 어느 여성이라도 그 치마로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에도 유연성과 창의성이 들어갈 여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쓴이:  소피 바우먼(Sophie Bow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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