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칼럼]미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방문이 남긴 것
상태바
[외교칼럼]미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방문이 남긴 것
  • 김영복 기자
  • 승인 2017.03.21 2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리아포스트 김영복 기자]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사령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방문이 끝났다. 이번 방문은 북한의 핵 능력이 제고되고 있고, 계속되는 미사일 실험 도발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뤄져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년에 걸친 북핵 억제가 실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북핵 문제에 접근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대북 강경론으로 선회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어서 미·중이 과연 직접적으로 이러한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물론 아직 트럼프의 대중·대북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고 특별히 4월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정상 회담을 앞둔 탐색전 성격을 띠고 있어 우리가 바라는 북핵이나 사드에 관한 구체적인 성과를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방문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틸러슨은 철저히 방문국 위주의 계산된 행보를 했다. 첫 번째 방문지인 일본에서는 경제 및 국방 협력과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일본 영토 등과 관련한 주권보호를 재확인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태평양지역 최고우방국이며 후방기지이자 파트너라고 공식화했다.

한국 방문에서는 첫 방문지로는 비무장지대(DMZ)를 택해 확고한 한미 안보 태세를 확인했고, 앞으로 북한이 무력 도발 위협을 계속해서 끌어 올리고 미국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른다면 외교·군사·경제는 물론 선제타격론도 북핵 해결의 옵션이 될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도 전달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방문에서 이렇게 북한과 북핵에 대한 강경 메시지를 던진 틸러슨은 정작 중국 방문에서는 말을 아꼈다. 왕이 외교부장과 시진핑을 만난 틸러슨은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갈등과 대립을 피하고 서로 윈-윈하는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의 문제이며 북한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미·북 3국 회담에 이은 6자 회담을 거론하고 나서 제재보다는 대화 쪽에 무게를 두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북한이 18일,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엔진 연소시험을 해도 중국이 아무런 통제도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사드 배치와 이로 인해 불거진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분명한 미국의 입장 표명을 기대했던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매우 기대 이하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인 사드 문제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사드에 대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음을 밝혔지만 미국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비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놓고 북한의 행동이 매우 위협적이므로 강력한 대북 제재 메시지를 전하고 중국을 통해 북한 정권에 추가 압력을 강화할 것이라던 입장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론이다. 오히려 틸러슨은 ‘중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대중 저자세 외교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을 정도다. 물론 중국도 환율조작이나 무역 역조 문제 등 미국의 주장에 대해 바짝 긴장을 하면서도 사드 반입의 주체인 미국에 대해 분명한 반격을 하지 않고 자제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단 본격적인 양국 관계의 시작 전에 서로의 마지노선을 탐색하는 모양새다.

이번 틸러슨의 방중은 표면적으로는 성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긴장 정세가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 해법에 대해서는 서로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이는 양국이 이 부분에 대한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양국은 첨예한 양국 현안 문제를 급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었고, 갈등 보다는 협력에 바탕을 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논의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다고 해서 논의가 안된 것은 아니다. 중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의 외교 사령탑이 양국 간 핵심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양자 간 현안은 물론이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론도 주문했을 것이다.

중국도 일방적 미국 주도의 북핵 해결 분위기에 끌려가지 않을 것임을 밝혔을 것이며, 미국은 이를 보면서 보다 큰 틀의 대북·대중 관계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이 측면에서 틸러슨이 ‘미중이 공동 노력을 통해 북한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중국이 대북 제재 이행에 미온적일 경우 외교적 마찰도 감수할 수 있음을 시사 한 것으로 주목된다.

이제 미중 간의 담판은 4월 초 미국에서 열리는 중-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양자간의 다양한 의제들이 향후 양국 관계와 국제적 주도권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일 것이다. 문제는 이번 틸러슨 방중에서도 보이듯 한중 간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사드문제가 어쩌면 미·중 양국이 서로 상대방을 떠보는 일종의 실험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위협은 현재 대한민국의 최대 안보 문제다. 미중 양국이 어떻게 얘기하든 북핵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국은 한국이며 민족 생존과 직결된 절체절명의 문제다. 주변 강국들이 하나 같이 민족주의 성향의 강성 지도자들로 구성돼 있는 상황이다. 조기대선 정국으로 어수선하지만 적어도 생존을 위협하는 북핵에 대해서는 중·미 양국에 외교적으로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글: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