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밀사' 이준 열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묘적지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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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밀사' 이준 열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묘적지서 열려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7.07.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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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영목 기자] 지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밀사로 파견됐다가 현지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의 110주년 추모식이 14일 오후(현지시간) 헤이그 시내의 이 열사 묘적지에서 열렸다.

이 열사는 당시 이상설, 이위종 대표와 함께 고종 황제의 특명을 받고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전 세계에 폭로·규탄하고 일본이 강압적으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려고 했으나 일본의 갖은 방해로 회의장에 아예 들어가지 못했다.

이에 이 열사는 '왜 대한제국은 제외하는가'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언론에 발표해 항의했으나 열강의 냉담한 반응으로 끝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연일 애통해 하다가 당시 머물렀던 '드용(De Jong)호텔'에서 순국했다.

'이준 열사 기념관'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윤영 주네덜란드 한국 대사를 비롯해 이기항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 원장, 송창주 이준 열사 기념관장, 프레데릭 함센 박연기념사업회장, 최봉열 네덜란드한인회장, 케이스 모츠하헌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회 명예회장, 네덜란드 거주 교민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사는 추모사에서 "이 열사는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와서 나라 잃은 설움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냉혹한 국제현실 속에서 분투하시다가 헤이그에서 눈을 감으셨다"면서 "이 열사의 순국은 이후 항일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사는 "오늘날 한국은 당시 대한제국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지만 여전히 국제 정치·경제적 상황은 복잡하고 어렵다"면서 "직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며 순국선열이 지켜낸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당부했다.

▲ 사진=이준 열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14일 오후 추모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 송창주 이준열사기념관장, 케이스 모츠하헌 네덜란드한국전참전용사회 명예회장, 이윤영 대사, 프레데릭 함센 박연기념사업회장).(연합뉴스 제공)

네덜란드인으로 조선 인조 때 귀화해 서양을 조선에 알린 박연(본명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을 기념하는 박연기념사업회의 함센 회장은 "이 열사는 한국의 진정한 영웅이고, 진정한 자유의 투사"라고 칭송했다.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은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일은 후손으로서 마땅한 도리이자 쓰라린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방도"라면서 "오늘은 이 열사가 순국하신 지 110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추모식을 이 열사의 유해가 있던 묘적지에게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 열사가 순국한 뒤 시신을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일본의 비협조로 송환이 안 돼 이 열사는 결국 헤이그 시내 묘지에 묻혔고, 56년 후인 지난 1963년에야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됐다.

지난 2013년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헤이그를 방문하던 중 이 열사의 묘적지를 찾아 헌화했고, 지난 1995년 1월에는 네덜란드를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이 묘적지를 찾기도 했다고 이 원장은 전했다.

한편, 이 열사가 순국한 '드용 호텔'은 이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세계인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함양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해 지난 1995년 8월 이준열사기념관으로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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