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관리협회 조석환 회장의 “한글 키보드 표준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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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보관리협회 조석환 회장의 “한글 키보드 표준화 역사”
  • 김수아 기자
  • 승인 2017.12.01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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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자판표준위원회 위원장의 50년 타자기 발전 스토리
[코리아포스트 김수아 기자] “대한민국에 진정한 남북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최근 어느 친지가 내게 이렇게 말을 해 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뜬금 없는 소리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끈질기게 유화정책을 펴고 있는 문제인 정권에 대해 줄곳 '콜드쇼울더'로 일관하고 있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온갖 유화 제스쳐도 모조리 묵살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주 평화적으로, 그것도 남,북이 서로 제안하여 함께 남북통일을 이룩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게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그가 소개한 화재의 인물은 지난 수십년간을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표준화와 과학화를 연구해 오고 있는 한국정보관리협회의 조석환 회장이다.
코리아포스트가 최근 조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평화적 남북 통일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에 대해 물어 봤다.
다음은 조회장과 가진 일문일답의 내용 이다.
▲ 한국정보관리협회 조석환 회장이 코리아포스트 이경식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리의 한글 컴퓨터 글자판 표준화의 역사는 반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1982년 발표한 ‘컴퓨터정보처리용 표준자판(제 KS C 5715호)이 글로벌 스텐다드로 자리매김 하여 전 세계 수 천만명의 한글컴퓨터 유저들이 무리없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남(南)․북(北)간의 정부차원의 교류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인 (사)한국정보관리협회 조석환 회장은 통일시대에 사용할 디지털 통신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에 대한 학술교류를 맺고 공동안을 만들어 기술특허와 상표등록을 마치고 사실상 표준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단체표준 등록신청을 끝으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발명작업을 마쳤다.
우리 민족은 유일하게 지구상에서 70년이나 국토가 분단되어 스마트폰등 모든 통신기기에 같은 뜻을 지닌 ‘훈민정음을 가지고 남(南)은 한글 북(北)은 조선글로 각각 다른 명칭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모의 차례나 맞춤법 그리고 사물을 다른 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일시대에 사용될 디지털 통신 단말기의 글자판은 배우기 쉽고 편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훈민정음에 담긴 철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한글과 조선글에 대한 디지털 통신기기의「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발명의 궁극적인 목표다.

질문: '한겨레 통일 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전문가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답변: 60년대 젊은 시절 미군부대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으로 아날로그 컴퓨터인 IBM과 UNIVAC 105기기를 접했고 동시에 영문 IBM전동 볼 타자기 글자판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부터 타자기 글자판에 관심을 버리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서울에 있는 청산여자 상업전수학교를 거쳐 성덕여자 상업고등학교 타자교사가 되었다. 타자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UCLA에서 타자교육의 대가이고 20th Century Typewriting 저자인 Lawrance W. Erickson박사에게 사사를 받았다. 최초로 타자글자판 교육으로 유학을 다녀온 첫 번째 사례다. 세종대왕이 공포한 훈민정음을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에 접목시키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국가기술표준원 한글 컴퓨터 글자판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 봉사할 뿐만 아니라 남.북 IT전문위원으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 한국정보관리협회 조석환 회장이 북과함께 발명한 한겨레 통일 표준 글자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특히나 1960년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됐던 세벌식 한글 타자기 글자판을 개발해 한글의 기계화에 앞장섰던 공병우 박사(1906∼1995)의 영향이 컸는데 75년도 크리스마스 전야에 필자를 삼청동에 있는 그의 자택에 초대해 “머지않아 도래할 정보화 시대에 사용될 컴퓨터는 속도가 빠른 세벌식 글자판이 제격”이라며 “젊은 조 선생이 세벌식 글자판을 더 발전시켜 정보화시대에 반드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남북이 극도로 대치하는 정국에 컴퓨터 한글 글자판을 통일해야 한다며 이 일에 힘써 달라고 부탁하던 공 박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공 박사가 개발한 세벌식 한글 글자판은 자음+모음+받침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한글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모아쓰기 글자판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2벌식 글자판에 비해 속도도 훨씬 빨라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컴퓨터에 걸맞은 글자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1969년 한글 글자판 표준화 작업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사무용 한글 글자판은 4벌식으로 통일했고 전신용(텔렉스)글자판은 2벌식으로 통일했다. 또한 1982년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여 회사마다 전자타자기 글자판, 워드전용기 글자판, 컴퓨터 글자판이 새롭게 개발되어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키자 정부는 1969년도 전신용(텔렉스)으로 표준화한 2벌식 한글 글자판을 정보처리용 글자판으로 확정하기에 이른다. 이후 2벌식 컴퓨터 글자판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글로벌 표준 글자판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 국가컴퓨터 글자판위원회도 형성 되었다.

2벌식 글자판으로 전신용 표준은 되었으나 프린터기기의 활자는 고정된 기계식휠(wheel)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한글의 특성인 모아쓰기인 받침이 아래에 붙는 처리가 불가능하여 한동안은 받침이 모음 바로 뒤에 붙어 출력되는 2벌식 풀어쓰기로 인해 불편을 겪기도 하였다. 이때 '세종 때문에 우리는 망했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글학자들 간에는 3벌식 모아쓰기 보다는 2벌식 풀어쓰기를 하여 한글 기계화에 영문과 같이 편리하게 적용하여 사용하자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서 중국의 왕컴퓨터 회사가 한문을 처리하기 위해서 도트(dot)프린트를 개발하는 계기로 한글 모아쓰기 받침은 슬며시 자동으로 해결되고 2벌식 풀어쓰기 주장은 한글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에는 3벌식 글자판으로 작성한 문서를 출력하면 빨랫줄에 다른 크기의 옷들이 걸려 있는 것처럼 글자 모양이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린터의 성능이 좋아져 2벌식이나 3벌식 글자판으로 작성해 문서를 인쇄해도 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많은 사람이 익숙해진 2벌식 글자판을 갑자기 세벌식 글자판으로 교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미국처럼 두 가지 글자판을 함께 표준으로 삼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미국은 현재 영어 타자기나 컴퓨터 글자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쿼티 글자판을 표준으로 삼고 있지만 쿼티 글자판보다 더 능률적이라고 알려진 드보락 글자판도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 조 회장이 북과 함께 발명한 「한겨레 통일 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스마트폰과 컴퓨터 글자판
 
▲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기술특허 등록증과 한겨레 상표등록증
질문: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에 대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변:
남북한 교류가 활발했던 2000년대 초반 산업표준화가 업계의 화두였는데 남북한의 서로 다른 컴퓨터 글자판이 그 중 하나였다. 남북한의 산업표준화는 오랜 분단의 영향으로 실제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는데 북한과 끈질기게 합의에 성공한 덕분에 남한에서 기술특허까지 얻어 완성품을 내놓았다. 이름은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이하 ‘통일 글자판’).  거창한 통일담론보다 생활 속에서 작은 것부터 통일을 시작해 보자는 생각으로 발명했고 남한의 한글과 북한의 조선글 사용 빈도에 따라 '통일 글자판’을 발명했다. 발명 후 기술특허는 빨리 나왔지만 한겨레 상표의 선등록으로 인해 오래 걸렸다. 결국 승소해서 한겨레 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통일 글자판’의 배열은 자음의 경우 북한의 글자판, 모음인 경우 남한의 글자판을 응용해 개발했다. 글자판 운영체제(OS)도 남한은 MS를 거의 사용하지만 북한은 유럽과 같이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MS, 리눅스 겸용으로 제작했다. 아울러 요즘 트렌드에 맞게 1년 전에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한겨레 통일 표준자판’ 앱도 설치했다. 
 
▲ 북의 민족화합협의 회의에서 금강산으로 남대표단을 초청한 초청장
 
질문: 통일 글자판 연구의 미래와 그에 대한 바램은 무엇입니까?
답변: 연세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서도 글자판 연구에만 몰두했는데 세월을 합하면 총 50여년을 투자한 것 같다. ‘통일 글자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4년 국가기술표준원 컴퓨터 글자판 전문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뒤 이듬해 평양, 개성, 금강산, 중국의 베이징 심양을 왕래 하면서 부터 인데 남북한의 학술교류를 통해 통일에 대비한 글자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북한의 파트너는 학술교류를 담당했던 민족화해협의회였으며 북한의 왕래가 불편해 중국의 조선족 언어정보처리학회를 중간 경로로 이용했다. 통일 글자판’이 실생활에 사용되기까지 시간과 검토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민간의 이런 노력들이 통일의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
▲ 존. 티. 언더우드(John T.Underwood)가 조선 크리스찬대학에 기증한 Underwood 타자기
 
질문: 한글 타자기 및 컴퓨터 글자판에 대한 역사적 배경 등에 관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글 기계화(발명된 타자기 우리나라 글자판에 한글 배열) 전문가 공병우와 김동훈 2분 계십니다. 60년 이전에는 두분이 개발한 한글 타자기 글자판이 난립하여 경쟁을 했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어 정부가 한글 글자판 표준화 작업을 서두르는데 일조를 했죠.
1969년 박대통령이 과학기술처를 설립한후 가장먼저한 계획이 한글 타자기 글자판 통일이었다. 결국 공병우는 3벌 (자음.모음.받침만), 김동훈은 5벌식 (옆 자음 윗자음 장모음 단모음 받침)은 속도가 느리지만 글자가 예쁘고 공병우 속도 3벌식 글자판을 자음.모음.받침만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속도는 빠르지만 글자모양은 김동훈 5벌식 체제보다 글자모양이 아름답지 못했다.
결국 사무용은 4벌식, 전신용(텔렉스)은 2벌식 한글 타자기 글자판으로 통일(표준)이 되었다. 
3벌식 글자판으로 작성한 문서는 빨랫줄에 다른 옷들이 걸려 있는 것처럼 글자 모양이 이상했다.
개발한 세벌식 한글 글자판은 글쇠에 자음과 모음 외에 받침까지 추가되어 있어 합리적인 글자판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2벌식 글자판에 비해 속도도 빠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공병우 속도 3벌식과 김동훈 체제 5벌식을 포기하고 사무용 타자기 글자판 4벌식 전신용 글자판은 2벌식으로 통일하였다.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시무실 환경이 타자기 대신에 컴퓨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새로운 사무환경의패러다임이 시작되자 글자판 논쟁은 슬며시 사라지고 한글기계화분야의 모든 업무가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었다.사무환경은 한글기계화에서 한글정보화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서 고등학교 타자교사를 하면서 한글 타자기기도 수집하기도 했다.
국가컴퓨터자판 전문위원회를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에서 맡아 달라고 했다.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발명을 위한 연구비도 지원해 주었다.
▲ 정보화시대에 따르는 민족어의 통일적 발전과 언어정보산업표준에 관한 학술모임

지난날 한창 언론에 이슈가 되고 있었던 모바일 한글 핸드폰 자판도 1980년대 컴퓨터 글자판처럼 대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S전자회사의 C모델과 L전자회사의 N모델이 시장원리에 의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s)이 자연스럽게 시장형성을 하고 있었다. 정부로서는 이시기에 표준화기회를 늦춘 다면 표준화 부제로 인한 산업화의 혼란을 초래 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2005년 11월에 ‘소형 키패드형 문자배열 표준화에 관한 기초연구’를 끝내고, 이듬해 2006년 8월에 ‘정보가전용 한글입력 키패드 표준안 연구’과제를 완성하였으며 2006년 11월 8일에는 ‘숫자판 문자입력 최종연구보고서 검토 및 향후 추진계획 등’의 연구보고서를 끝냈고, 2007년 10월과 2008년 11월에는 정보기술. 텍스트와 사무 시스템을 위한 키보드 배열 . 제8부: 숫자 키패드의 키에 대한 문자배열 연구보고서(KS X ISO/IEC 9995-4, KS X ISO/IEC 9995-8)를 개 재정했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2009년 11월에 휴대폰 한글 문자판 간담회를 시작으로 한글자판 표준기술위원회가 구성되고 브롬스토밍형식으로 제10차 회의를 거처 어렵게 평가지표를 완성해 놓았었다.
이렇듯 반세기의 정보처리용 글자판의 표준화의 역사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정보가전용 한글 입력 키패드 표준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배열방법도 중요하지만 평가지표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이미 시장원리에 의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s)’이 된 시장점유율을 무시하는 것은 산업화의 역기능을 초래하므로 복수표준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글 핸드폰자판 표준화추진이 어려움을 격고 있던 중,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s)으로 자리 매김한 자신의 천지인 모델의 특허일체를 포기하고 국가에 헌납한다는 개발자 조관현사장의 결단의 발표는 국가표준화의 돌파구를 열어주었을 뿐 만 아니라 국가표준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 같아 국가 한글자판표준위원회 위원장으로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이 모델 역시 글로벌 스텐다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필자의 소망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한글 표준화의 결과는 곧 글로벌 스텐다드로 이어져 한글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 최초의 한글 횡서(가로 굴어쓰기)을 개발한 언더우드 선교사)
질문: 중국의 한글 공정과 휴대폰 전화 글자판에 대해 말씀 부탁 드립니다.
답변:
중국조선어정보학회가 자국 내 중국동포가 사용할 ‘휴대전화 글자판배열 표준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소식이 몇 년전에 국내에 전해지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 등 모바일 기기의 한글 입력 방식을 자체 개발해 국제 표준화하겠다는 이른바 ‘중국의 한글공정’은 국민정서를 크게 자극했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따로 언문을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려고 하니 이는 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쓸모없는 것을 취하는 일이어서 문명의 큰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니겠느냐”며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올린 사건을 연상시켰다. 한글 종주국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 전 국회의원이자 대경대 총장을 지낸 강삼재 박사가 통일백서 발간에 격려사를 써주었다

이제는 그동안 한글 글자판 표준화 분야에서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지 차분하게 검토해봐야 할 때다. 정보처리용 자판의 표준화 사업은 50년대 타자기 시대부터 시작됐다. 69년 텔레타이프 2벌식 글자판 풀어쓰기와 사무용 타자기 글자판 4벌식에 관한 표준화법이 공포돼 표준화 역사에 초석을 놓으며 발전해왔다.
논란이 된 모바일 휴대전화 한글 글자판은 80년대의 컴퓨터 글자판처럼 삼성전자의 ‘천지인’이나 LG전자의 ‘나랏글’ 모델이 시장원리에 의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s)’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2012년 중국. 연길 연변대학교에서 열린 다언어 정보학 및 방송정보통신학 국제학술대회

 

▲ 1999년 제 12회 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한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에서 조 회장은 우리나라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김대중 대통령의 포장을 받았다.

 

▲ 김대중 대통령이 조 회장에 수여한 포장증

인터뷰를 마치면서 60여년전 홍능에 있는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공병우 한글 타자기 연구소 한글전문위원 그것도 컴퓨터 소위원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주요한 박사님, 공병우박사님, 이관구회장님, 장봉선 사장님, 김성교수님. 임종철 선생님  생존해 계신 안수길 박사님(서울대학교 교수), 박종국 회장님(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강태빈 선생님(한국타자교육연구회), 이윤온 선생님(공병우 한글타자연구소)들과 같이 한글기계화에 대한 연구와 함께 동역한 정순자 박사님(동주여자 대학교), 신재기 교수님(가천길대학교), 이원표교장 선생님(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 김덕겸 교장 선생님(부산의 테크노 고등학교)격려가 본인이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가기술표준원 국가컴퓨터 글자판 전문위원회 위원장과 국립한글박물관 한글기계화 전문위원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이곳 까지 이끌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2005년과 2006년도에 평양과 금강산, 개성, 남포, 모향산과 중국 심양과 북경 오가면서 북과 합작으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를 발명하는 행운도 가지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더욱이 진한 민족에와 동포의 사랑을 가지고 연구한 북의 과학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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