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뉴스]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로 기존질서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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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뉴스]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로 기존질서 재편
  • 김인태 기자
  • 승인 2017.12.18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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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세계질서…'투키디데스 함정' 현실화하나

[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인태 기자] 2017년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세계질서가 요동친 한 해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상징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달라진 국제관계 접근법이 지구촌에 예상치 못한 새 질서를 강요하고, 그로 인해 패러다임의 격변까지 일으킬 기세다.

최강 패권 국가로 꼽히던 미국이 트럼프 주도로 '자유민주세계의 수호자' 또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사이 빈틈을 타 중국이 신흥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국제사회 주도국으로서 '뜨는' 중국과 '지는' 미국 사이의 도전과 응전이 격화함에 따라 미중의 충돌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신흥강국 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의 불안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분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중 간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美, 기후협약 탈퇴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까지…다시 쓰는 세계질서

트럼프 시대의 신(新) 국제질서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실현과 확산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철저히 미국 이익 우선이라는 잣대로 새롭게 줄 세우기를 하는 데서 출발한다. 트럼프는 기존 질서 유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대선 지지층인 제조업 근로자와 유대 자본의 이익 추구라면 무슨 일도 할 기세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기준에 따라 전임 미 행정부의 약속은 물론 오랫동안 지켜온 국제사회의 관례들을 서슴없이 뒤엎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탈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불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의회 통과를 앞둔 대대적인 감세안 추진 역시 무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유럽 5개국의 공식 반대를 야기했다.

국제기구 역할에 대한 존중, 환경과 자유무역 보호라는 미국적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모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에서 "트럼프 취임 이후 많은 이들이 우려해온 국제질서의 와해를 확인했다"며 "트럼프는 글로벌 공동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더욱 강력한 제도나 기구보다는 미국이 더욱 나은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을 천명해왔다"고 규정했다.

AP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곧 발표할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관한 기사에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란 미국에 혜택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동맹, 조약, 국제협정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라이벌들을 서로 패권을 놓고 싸우는 대상으로 보는 냉혹한 세계관"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고 자유시장 시스템을 확립하려던 미국의 질서 구축 노력이 역행하는 양상이다.

특히 무역적자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보호주의 물결은 국제안보에도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핵심 동맹에 손익계산서부터 내미는 미국의 달라진 태도가 곳곳에서 혼돈을 불러오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고조된 북핵 안보위기도 이런 측면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가장 단단한 공조를 과시해야 할 한국에 오히려 방위비 분담과 FTA 재협상을 압박하는 트럼프 정부의 행보가 북한에 오판의 여지를 주고 동맹을 불안하게 만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의 사정도 비슷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해 아랍권 갈등을 폭발 직전으로 몰고 간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란 핵 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듭 시사하는 것 역시 전임 정부 약속 뒤집기의 일환이자 중동 안보에 먹구름을 드리운 조치로 평가된다. 심지어 이란 핵 합의 파기는 북핵 해결에도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 꿈틀대는 '중국몽', 새로운 리더십 될까…충돌 가능성에도 촉각

불개입과 고립주의를 택한 미국의 국제사회 공백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꿈(중국몽·中國夢)을 꾸는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일정 부분 메워지는 추세다.

미국이 기후변화협정을 거부하고 유네스코에서 발을 뺄 때마다 중국이 나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 이런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외교관인 치엔탕 유네스코 사무총장보는 지난 10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중국은 국제적 책임을 지길 원하고 지구촌 수준에서 평화와 개발에 기여하길 원한다"며 새로운 리더십을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고 아시아태평양 16개국이 참가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함으로써 TPP에서 철수하고 다자무역 시스템을 흔드는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을 중심으로 거대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구상)를 통한 국제적 영향력 확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의 외교 키워드인 '신형 국제관계'는 중국이 새로운 국제 위상에 걸맞게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한다.

시 주석이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인류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을 10차례 이상 사용해 미국의 보호주의와 대립각을 세운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특히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입지 약화와 중국의 부상을 상징적으로 부각한 무대가 됐다.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빗대어 "트럼프 대통령이 순방에서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에 순순히 패권을 이양함으로써 평화적인 헤게모니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에 맞서 '힘을 통한 평화 보존'을 이루겠다는 내용이 담긴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마련 중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중국을 견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함으로써 일본·호주·인도 등과 함께 중국 봉쇄에 나선 상태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가능성, 북핵 해법, 대만 문제가 양강 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벨퍼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저서와 언론 기고에서 이런 이유를 들어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양국 간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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