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0번째 생일 맞은 모터스포츠의 전설 한스 헤르만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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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0번째 생일 맞은 모터스포츠의 전설 한스 헤르만 기념
  • 박영호 기자
  • 승인 2018.02.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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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박영호 기자] 슈투트가르트. 포르쉐 AG(Dr. Ing. h.c. F. Porsche AG)는 지난 23일, 모터스포츠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 한스 헤르만(Hans Herrmann)의 90번째 생일을 기념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출생한 한스 헤르만은 포르쉐 AG 워크스 팀 소속의 가장 성공한 인기 레이싱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80회 이상의 모터스포츠 우승 경력을 가진 헤르만은 내구 레이스 및 모노포스트 분야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수로 평가 받는다.

한스 헤르만은 주펜하우젠에서 만들어진 포르쉐 스포츠카와 함께 "한스 인 럭(Hans in Luck)"으로 회자되는 위대한 성공 신화를 썼다.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카레라 파나메리카나(Carrera Panamericana)는 물론, 1970년 르망(Le Mans) 대회에서 포르쉐 917을 타고 첫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52년, 개인 소유의 포르쉐 356 모델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헤르만은 힐 클라임, 랠리, 클래식 등의 다양한 종목에 참여했다. 이듬해 리차드 폰 프랑켄베르크 (Richard von Frankenberg)와 함께 포르쉐 356 모델로 참여한 '리옹 샤흐보니에흐 랠리(Lyon-Charbonnières Rally)'에서 5위를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그 당시 포르쉐 레이싱 매니저였던 허슈 폰 헨스타인(Huschke von Hanstein)에 의해 포르쉐 워크스 팀으로 발탁되었다.

1953년, 헤르만은 포르쉐 550 쿠페를 타고, 헬름 글레클러(Helm Glöckler)와 함께 처음으로 르망 24시 대회에 출전했으며, 배기량 1.5리터 부문에서 첫 출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독일 스포츠카 챔피언(German Sports Car Champion)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 칼 클링(Karl Kling)을 영입해 26세의 젊은 팀을 구성한 메르세데스-벤츠 레이싱 팀 감독 '알프레드 노이바우어(Alfred Neubauer)'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1954년, 헤르만은 포르쉐 소속팀으로 550 스파이를 타고 밀레 밀리아와 카레라 파나메리카나에 출전해 우승의 영광을 얻었다.

1954년에는 밀레 밀리아 대회에서는 헤르만과 허버트 링게(Herbert Linge)가 경기 도중 오른쪽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기차를 피해 철도 건널목 차단기 아래를 통과해야만 했던 아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헤르만은 "유브 갓 투 비 럭키(You've got to be lucky)"라는 문구와 함께 이 극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을 남겼으며, "레이싱 선수에게 있어 행운이란 살아 남는 것(Luck, for a racing driver, is to survive)"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 사진=포르쉐, 모터스포츠의 전설 한스 헤르만(Hans Herrmann) 생일 기념.(포르쉐 제공)

1955년, 다임러-벤츠가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하면서 한스 헤르만은 다시 포르쉐로 소속을 옮겼다. 이후 마세라티, 브리티시 레이싱 모터스 그리고 보그바르트를 거치는 방황의 시기를 겪었지만, 1959년 포르쉐 AG 소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헤르만은 1960년 올리비에 젠데비엔(Olivier Gendebien)과 함께 포르쉐 718 RS 60 스파이더를 타고 출전, 세브링12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포르쉐의 최초 매뉴팩처 월드 챔피언십 내구레이스 우승을 이뤄냈다. 또한, 조아킴 보니에르(Joakim Bonnier)와 함께 718 RS 60 스파이더로 시칠리아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에 참가해 우승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포르쉐 718/2를 타고 출전해 포뮬러 2 유러피안 챔피언이 되었다.

1962년에는 카를로 아바르트(Carlo Abarth)로 소속을 옮긴 후 1963년부터 빈 디자인 엔지니어의 워크스 드라이버로 활동했으나, 3년 후 포르쉐 워크스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헤르만은 모든 내구 레이스뿐 아니라 유러피안 힐 클라임 챔피언십 코스에서도 활약했으며, 당시에 새롭게 오픈한 바이작(Weissach) 개발 센터에서 많은 테스트 드라이브를 실시한 장본인이었다.

1969년, 한스 헤르만과 요 지페르트(Jo Siffert), 빅 엘포드(Vic Elford), 롤프 스톰멜렌(Rolf Stommelen), 우도 쉿츠(Udo Schütz) 그리고 게르하르트 미터(Gerhard Mitter)로 구성된 포르쉐 워크스팀은 매뉴팩처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헤르만은 역사상 가장 스릴 넘치는 르망 레이스로 꼽히는 경기에서 치열한 격전 끝에 포드 GT 40 차량으로 출전한 재키 익스(Jacky Ickx)에게 불과 120미터 차이로 아쉽게 패했으나, 이듬 해에는11번째로 참가한 르망 레이스에서 포르쉐의 첫 번째 종합 우승컵을 차지했다.

한스 헤르만은 42세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꾸준한 전성기를 누렸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아내 마들레인(Madelaine)에게 우승을 조건으로 은퇴를 약속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으며, "르망 클래식(Le Mans Clas-sic)",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솔리튜드 리바이벌(Solitude Revival)" 등 포르쉐 박물관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클래식 자동차 행사에 주요 인사로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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