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지켜진 볼보 '독립경영'…금호타이어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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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지켜진 볼보 '독립경영'…금호타이어도 가능할까
  • 한승호 기자
  • 승인 2018.03.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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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한승호 기자]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려는 중국 더블스타가 지리(吉利)자동차의 볼보 인수 사례를 따르겠다고 언급하면서 볼보의 매각 과정과 독립경영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지리가 처음 볼보 인수를 추진할 때만 해도 볼보 노조를 중심으로 스웨덴 내에서 기술 유출 및 고용 불안정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지리가 설득 끝에 노조 동의를 끌어내고, 인수 후에는 약속대로 투자 집행 및 독립경영을 하면서 현재는 성공적 기업 부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中 기업 거부하던 볼보 노조, 지리 노력에 입장 선회
25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1999년 볼보 승용차 부문을 인수한 미국 포드자동차는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영이 어려워지자 2010년 볼보를 약 18억달러(약 1조9천억원)에 지리로 넘겼다.

당시 기준으로 설립된 지 12년밖에 안된 신생 중국 업체가 83년 전통의 세계적 자동차 명가를 품에 안은 것이다.

포드가 볼보를 인수할 당시 가격이 약 65억달러(약 7조원)였던 것과 비교하면 '헐값 매각'이었다. 매출 규모를 비교해도 지리는 볼보의 20분의 1에 불과해 '새우가 고래를 삼킨 꼴'이었다.

처음에 포드는 볼보의 기술유출 우려 등 지식재산권 문제 때문에 지리에 매각하는 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볼보의 기존 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포드가 유지하고, 지리는 볼보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권리를 얻는 것으로 양사가 타협하면서 매각이 진행됐다.

지리는 볼보의 브랜드와 관리체제, 생산 및 연구개발(R&D) 설비, 판매망 등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이었기 때문이 손해 볼 게 없었다.

원만하게 진행되는 듯했던 매각 과정은 곧 유럽 기업이 인수하길 희망하던 볼보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볼보 노조는 인수 후 세부적 자금 융자 계획과 장기적 발전 계획, '2015년까지 60만대 생산' 목표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면서 지리 인수에 반대했다.

볼보 기술자 노조가 중심이 된 야콥 AB 등으로 구성된 스웨덴 컨소시엄이 뒤늦게 인수전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자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볼보 역시 오랫동안 강한 노조 문화가 형성돼 왔던 탓에 지리가 회사를 인수해 잘 끌어나가려면 노조 합의가 필수적이었다.

지리는 인수 후 볼보를 독립 브랜드로 계속 유지하고 볼보 경영진이 이사회의 전략적 방향에 따라 사업 계획을 실행하도록 자율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스웨덴과 벨기에에서 생산을 계속하겠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볼보 노조 관계자들이 지리 공장을 찾아 설비를 둘러보고 지리 노조와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른 인수 후보자를 찾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리의 진정성을 확인한 볼보 노조는 결국 반대 의사를 철회했고, 리슈푸(李書福) 저장지리홀딩스 회장은 최종 인수 계약에 앞서 볼보를 스웨덴 회사로 남겨둘 것을 약속하는 부속 문서에 서명했다.

당시 스웨덴 금속노조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생산 및 R&D 기반과 본사가 스웨덴에 남아있는 점, 중국이 최대 자동차 시장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수 후 긍정적 고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사진=금호타이어 노조와 인수 후보인 중국 더블스타 차이융썬 회장.(연합뉴스 제공)

◇ 볼보 경영진 모두 스웨덴인, 이사회에 노조 대표도 참여
지리는 볼보를 인수한 뒤로 회생 작업과 R&D 등에 5년간 100억달러(약 10조8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고, 볼보의 기존 차종 라인업 대부분을 신차로 교체하는 대대적 제품 혁신에도 돌입했다.

그 결과 볼보의 자동차 판매는 2009년 33만대에서 2010년 37만대, 2014년 47만대를 거쳐 2017년 57만대까지 늘었다.

영업이익은 인수 다음 해인 2011년 16억4천만스웨덴크로나(약 2천억원)에서 작년 기준 141억스웨덴크로나(약 1조8천억원)로 훌쩍 뛰었다.

이처럼 볼보가 중국 기업으로 넘어가서도 성공적으로 회생한 데는 지리가 인수 후 8년 넘게 독립경영 약속을 지킨 영향이 컸다.

볼보 본사는 여전히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으며 하칸 사무엘손 최고경영자(CEO), 한스 오스칼손 최고재무책임자(CFO), 헨리크 그린 R&D 부사장 등 경영진은 모두 스웨덴인이다.

볼보 자동차그룹(볼보AB) 이사회 구성원 총 11명 중 지리 측 이사는 리슈푸 회장을 비롯해 3명뿐이다. 나머지 스웨덴 또는 유럽 출신 이사 8명 중 3명은 볼보 노조 대표들이 맡고 있어 주요 의사결정을 노조가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있다.

볼보 이사회는 감사위원회와 제품 전략 및 투자위원회를 지정해 기업 지배구조, 재무 상황, 제품 전략 및 관련 투자 등을 감독한다.

또 지리는 인수 후 지금까지 스웨덴과 벨기에에서 약속대로 생산을 유지하고 신규 채용을 지속했다.

현재 볼보의 스웨덴 현지 인력은 인수 전과 비교해 2배가량 많은 2만1천명이며, 벨기에 공장 인력도 2천명에서 5천명으로 불어났다.

볼보 노조위원장은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지난 8년간 지리가 합의를 존중하고 있다. 앞서 인수했던 포드보다 낫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리와 볼보는 독립경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지난해 공동 브랜드인 '링크'와 '폴스타'를 선보이는 등 시너지도 내고 있다.

차이융썬(柴永森) 더블스타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리-볼보 사례처럼 금호타이어 본사를 한국에 두고 한국인 경영진을 구성한 뒤, 더블스타는 대주주로서 주주권을 행사하고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독립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대 주주로서 사외이사를 추천해 경영에 참여하며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 기술이나 지식재산권을 이전하거나 사용할 때 이를 견제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리의 볼보 회생 사례가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를 위해서는 채권단이 더블스타와 계약서에 독립경영 보장과 '먹튀' 방지 장치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넣어야 하며, 노조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양보와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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