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뉴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미 전역 뒤덮은 '총기규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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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뉴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미 전역 뒤덮은 '총기규제' 시위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8.03.2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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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박병욱 기자] 2월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더글라스 고교 총격사건 생존학생들이 주도한 총기규제를 위한 행사가 24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한 미 전역에서 일제히 열렸다.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을 주제로 한 이 행사에는 초·중·고교생은 물론 교사, 학부모, 연예인, 일반시민을 포함한 각계 각층 인사들이 참석하는 등 총기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는 큰 염원들이 한 데 모아졌다.

주 행사가 열린 워싱턴DC에만 주최 측 추산으로 80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고 미 NBC방송은 전했다.

워싱턴DC 행사는 이날 정오부터 의회 일의사당 주변 무대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엠마 곤살레스 등 총격 사건 생존학생들을 비롯해 20명의 청소년이 연이어 연단에 올라 총기규제를 호소했다.

곤살레스는 숨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참사 순간을 생생히 증언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17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걸린 6분 20초에 맞춰 연설을 했다.

더글라스 고교 합창단은 희생된 친구들을 위해 만든 자작곡 '샤인'(shine·빛)을 불렀고, 중간중간 "우리는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등 구호를 외쳤다.

이어 나선 아리아나 그란데, 마일리 사이러스 등 유명가수들의 공연이 끝난 뒤, 인근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일대를 행진하며 총기규제 입법을 주장했다.

학교 총격 참사 현장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격용 소총 'AR-15' 판매를 금지하고, 총기 구매 시 사전 신원 조회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행사에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9살짜리 손녀 욜란다 르네 킹이 깜짝 등장해 발언대에 올랐다.

욜란다는 1968년 암살자의 총격에 쓰러진 킹 목사의 50주기를 2주가량 앞둔 이날 할아버지의 1963년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를 인용한 총기규제 지지 발언으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우리 할아버지는 그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닌 인품으로 평가받기를 꿈꿨다"며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의사당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다시는 안 된다", "더는 침묵하지 말라", "정치에서 미국총기협회(NRA) 돈을 빼라"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이 넘쳐났다.

집회에 참석한 여학생 레이첼(15)은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해 왔다"며 "의회가 우리의 문제를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위 행렬은 의사당에서 2.5㎞가량 떨어진 백악관 인근까지 이어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 휴양지인 마라라고 리조트로 떠나 부재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인근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으로 갔으며, 미 전역을 휘감은 이 행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 사진=미 전역에서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된 24일(현지시간) 오후 수도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가득 메운 시민들.(연합뉴스 제공)

백악관은 성명을 내 "수정헌법 1조(언론·출판·집회의 자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많은 용감한 미국인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신원 조회 강화를 비롯한 총기규제 노력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라델피아,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의 800여 곳에서도 행진이 이어졌다.

뉴욕 행진에는 영국의 록 밴드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1980년 총격에 희생된 동료 존 레넌이 발걸음을 이끌게 했다면서 "우리가 총기 폭력을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조지 클루니와 인권 변호사인 부인 아말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등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유명 방송인들은 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해 행사를 도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 계정에서 "오늘 행진이 있게 한 젊은이들로 인해 큰 영감을 받았다"며 "계속해라. 여러분은 우리를 전진시키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격려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도 잇따라 응원 글을 올렸으나, 공화당 인사들은 말을 아꼈다.

플로리다 주(州)가 지역구인 마코 루비오(공화)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 파크랜드 고교 학생들과 집회를 칭찬하면서도 "총기 금지는 수정헌법 2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총기 옹호 단체인 NRA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의 진행자는 "희생자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아무도 너희 이름을 모를 것"이라고 비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99년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교 총격 참사 이후 지난 20년간 200여 명의 학생이 학교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워싱턴포스트(WP) 분석에 따르면 이 기간 193개 학교에서 18만7천 명의 학생이 총격 사건을 경험했다.

미국에 앞서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이날 시위에 동조하는 집회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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