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中企 탐방] “신의를 쫓아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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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中企 탐방] “신의를 쫓아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 했습니다.”
  • 김수아기자
  • 승인 2018.08.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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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용기전문기업 ㈜ 미영
[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수아 기자]  화장품 용기전문업체인 ㈜ 미영( 대표 전경국 )은 ‘신의’를 아는 직원들이 오랫동안 함께해  멈출줄 모르는 성장세를 이어가는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색조, 기초 화장품 용기를 소형부터 대형까지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생산해 내는 ㈜미영은  인천 남동공단에 현재 3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금형제작부터 원료사출 인쇄 등  전과정을 이곳에서 해결하는 (주)미영은 더페이스샵의 화장품 용기 납품을 시작으로 현재도 발전을 거듭 중인 기업이다. 
 
그 당시 하리수 모델이 선전해 국내 화장품시장을 휩쓴‘ 빨간통의 도도화장품’과도 거래를 하는 등 시장을 확대해 갔다. 그러나 도도화장품이 부도가 나고 ㈜미영도 7~8억 의 연쇄부도를 맞게 되면서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전경국 ㈜ 미영  대표는“7~ 8 억 부도를 모두 갚는데 7년 걸렸다. 그러나 한푼도 떼먹지 않고 모두 갚았다”며 “  하루 빚독촉 전화만 200 번씩 받았지만 아직 젊다는 점을 앞세워 빚은 꼭 갚는다는 신뢰를 협력사 대표들에게 안겨준 것이 적중했다 ”고 회상 한다.
 
(주)미영은 이미 공식 출범 이전 한 기업가에게 사기를 당해 수억원의 빚과 함께 어쩔수 없이 떠안게 된 회사 이다.
 
 전 대표는 “그 당시 지저분하고 작은 창고건물에서 크림용기 금형 하나만 갖고 다시 시작했다. 
 돈이 없어 청소, 전기공사, 용접, 칸막이 등 온갖 일들을 직접 할 수 밖에 없었고 식비도 부족해 매일 점심,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면서 한 종류의 라면이 지겨워 끼니마다 다른 라면을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 전경국( 사진) (주)미영 대표는 최저 임금 상황에서도 고용 창출에 기여해 지난 7월 24일 인천시에서 수상하는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상을받았다.
 
강남 고객사 방문때는  고물 소리나는  1톤 트럭을 타고 방문했다가 무시도 많이 당했고
밥값을 아끼기 위해 강남 한복판 트럭 짐칸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쫓겨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밑바닥생활부터 시작한 그에게 이후 성실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금형집 등 주변을 통해 소량이지만 거래처를 소개받아 늘려 나간 것이 현재 거래처 180 군데에 1200 품목을 납품하는 ㈜미영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과정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처음부터 함께한 현재의 임지운실장과 먼저 ㈜미영에 몸담고 있으며 본인을 이곳으로 오도록 계기를 만들어준 장무청이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 한다. 
 
또 힘든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신의를 아는 직원들’역시 ㈜ 미영의 존재유지에 한 몫을  담당했다고 한다. 
▲ 전경국 ㈜미영대표( 사진 중앙)가 30~ 33년을 함께해 직원이라기 보다 형제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장무청이사( 사진 왼쪽)와 임지운실장 ( 사진 오른쪽)
 
“장무청이사 ,임지운실장은 30~ 33년을 함께해 저에게 직원이라기 보다 형제같은 사람입니다.”맹장이 터진지도 모르고 일처리에 정신없던 장 이사는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마쳤는데  그는 바로 다음날 오후 출근해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미영 초창기에 한 집안의 가장임에도 회사 사정을 잘 알기에 미안해서 급여를 받아 갈 수가 없다고 말했던 사람. 출근해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지금까지도 휴일 없이 출근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길이 막히면 시간 낭비되고 또 근무시간에 회사를 비워야 한다며 항상 새벽4시에 출발하자고 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초창기 자금문제, 직원문제로 너무 어렵다고 했음에도 아무런 조건없이 와준 임지운 실장은   단 한번도 지시나 의견에 “안됩니다, 힘듭니다 불가능 합니다 ”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고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잘 처리해준  철인같은 인물이라고 전대표는 표현한다. 
 
㈜미영에는 이들외에도 11년을 함께하며 신의를 지켜온 다수의 직원이 또다른 버팀목이 되어 주어 성공의 길을 걷게해 주었다고 자랑한다. 이들이 조건 환경등이 훨씬 좋은 곳으로 일찌기 옮겨 갔다면 ㈜미영의 이런 성공은 없었다는 의미다. 
 
“처음엔 매순간마다 좌절하고 모든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미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돈을 쫓지 않고 신의를 쫓아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그래서는 그는 “  ㈜ 미영은 ‘신의’를 아는 직원들이 만든 회사이며 또 계속 만들어 가는 회사” 로 표현한다. 
 
㈜미영의 처음 회사명은 미영산업이었다. 힘든 과정에서도  본인을 믿고 남아준 직원 몇 분의 부탁도 있었지만 그날의 어려움을 잊지 않기 위해 회사 이름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미영'이라는 회사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영의 역사는 현재 15여년을 맞지만 앞으로 100년을 이어가는 튼튼한 회사로  남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다.
 
현재 ㈜ 미영은 소재 등의 발빠른 개발과 기술력 향상 등으로 승부하고 있다.  전자 쪽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 한 예로 정전기 방지 등의 기능을 보강한 국내 유명디스플레이 업체의 대형 필름 보관 용기 개발에 성공 10 년 전부터 생산해 전자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158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인 ㈜ 미영에는 이중 30%는 외국인근로자다.  ㈜ 미영은 지난달 24일 인천시에서 수상하는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으로 상도 받았다 . 최저 임금 상황에서도 고용 창출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미영은 소량 다품종의 각종 용기 생산으로  올 해 250억원의 매출을 예상한다. 작년은 화장품사의 사드 타격으로 4%하락을 했지만 매년 30%대의 고성장세를 이어온 소위말하는‘잘나가는 中企 ’임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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