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알린 '독립신문' 호외 최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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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알린 '독립신문' 호외 최초 발견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8.12.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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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영목 기자]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사실을 알린 '독립신문' 호외(號外)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소도시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임시정부가 간행한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이승만의 탄핵 사실을 알린 호외의 존재는 그동안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다.

13일(현지시간)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의 차남인 장자크 홍 푸 안(76·프랑스 거주) 씨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에 따르면, 홍재하가 남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관련 자료 가운데 독립신문이 대한민국 7년(1925년) 3월 25일 호외로 발행한 신문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독립신문은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발행했던 기관지로, 독립운동가들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펼치고,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던 창구 역할을 했다. 흔히 알려진 서재필 박사의 독립신문과는 제호만 같을 뿐 다른 신문이다.

'대통령 탄핵안 통과'라는 제목의 이 호외에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회)이 1925년 3월 18일 이승만을 탄핵하고 면직시킨 것, 그리고 박은식을 곧바로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한 내용 등이 신문 한장에 담겼다.

호외에는 ▲대통령 이승만 면직 ▲신(新)대통령을 선출 ▲신대통령 박은식 취임식 거행 ▲국무원 동의안 통과의 네 개 소제목으로 사실관계가 건조하게 기술됐으며, "3월 18일 임시의정원 회의에 임시대통령 이승만 탄핵안이 통과되다"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임시정부 인사들은 당시 이승만이 주장한 국제연맹 위임통치안에 반발해 그가 상해 임시정부에서 직접 직책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임시의정원 결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발견된 독립신문 호외는 곳곳이 찢어져 있는 등 보존상태가 완벽하진 않아도 글자를 모두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제작을 맡긴 인쇄소의 당시 활자 사정이 여의치 않은 듯 한자·한글이 혼용된 글자들의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것도 특징적이다.

이승만의 탄핵 이유와 과정을 기록한 사료들은 '임시정부 공보(公報) 42호 심판서' 등 정립된 형태로 남아 있지만, 이를 일반 대중에 알린 독립신문 호외의 존재 자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호외는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가 간직해온 것으로, 1960년 파리 근교에서 그가 암으로 타계한 뒤 장녀를 거쳐 차남인 장자크 씨가 생브리외(Saint-Brieuc)의 자택 창고에 보관해왔다.

이 자료에서는 또한 임시정부가 독립투쟁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재무부 포고령도 발견됐다. 이 역시 실물로 전해 내려오는 양이 많지 않아 희소성이 큰 사료다.

▲ 사진=1925년 3월 이승만의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사실을 알린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호외가 최초로 확인됐다.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미발굴 사료다.(연합뉴스 제공)

장자크 씨를 수년 전 우연히 알게 된 재불 동포 김성영·송은혜 씨 부부는 그의 도움 요청을 받고 자료들을 살펴보던 중 중요성을 직감하고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 접촉했다.

홍재하의 유품 중 근현대사의 중요 사료들이 다수 포함됐다고 본 국편은 지난주 장자크 씨의 자택으로 조사팀을 급파해 독립신문 호외 등 다수의 사료를 확인했다.

국편 김득중 편사연구관(국외자료조사팀장)은 "이승만 탄핵을 알린 독립신문 호외의 존재 자체가 그간 알려진 바 없었다"면서 "국내에서 발행된 독립신문 영인본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내용으로, 임시정부의 새로운 사료"라고 말했다.

장자크 씨로부터 자료를 기증받은 국편은 이 호외를 보존처리를 거쳐 내년 임시정부 100주년 관련 전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승만의 탄핵을 알린 독립신문 호외가 머나먼 프랑스에서 발견된 배경에도 학계는 주목한다.

당시 임정이 중국에서 다량 발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호외는 중국에서는 국공내전 등 전란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일제의 탄압과 해방정국,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홍재하가 임시정부 인사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보이는 호외는 파리 근교에 거주하던 홍재하와 그 자녀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관될 수 있었다.

이 자료는 재불독립운동가 홍재하가 프랑스에서도 임시정부 인사들과 매우 밀접히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

홍재하가 1920년대 프랑스에 있던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활동 자금을 모아 보냈다는 내용은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이 1920년 보낸 친필서신이 발견돼 최근 확인된 바 있다.

김득중 편사연구관은 "상하이에서 발행된 임시정부 기관지의 호외가 프랑스에 살던 홍재하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그와 임시정부가 강력한 유대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홍재하가 해외 임시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가늠해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장자크 씨가 부친이 남긴 근현대사 기록물 전체를 국편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국편은 자료들의 보존처리와 연구를 거쳐 '홍재하 컬렉션'(가칭)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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