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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북아국, 한국, 중국, 일본, 더 가깝게 지낼 수는 없을까요?"5월, ‘한.중일의 달‘에 생각해 본다.
신진선 기자  |  edt@koreap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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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30  10: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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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정, 여의도여자고등학교 3년]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가깝게 지내야 서로에게 유리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고,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한 여고생이 3국 관계 개선에 관해 좋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5월은 ‘한중일 삼국의 달’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한중일 삼국의 정상이 주로 5월에 만나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한중일 삼국의 합의 하에 ‘한중일 삼국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이 서울에 생겨나게 되는데, 지금까지 총 7차례에 걸친 한중일 정상회담 중에서 5월에 만난 게 4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중일 사무국이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도 한중일 정상회담은 가능한 5월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 왼쪽부터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굳이 한중일 사무국의 자료가 아니더라도 한중일 삼국은 서로 경제사회적으로 매우 상호의존적이고, 사람들의 방문 역시 매우 빈번하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동안 해외 여행을 다녀온 한국인의 숫자가 2천만명이 조금 안 되는데, 이 중에서 일본과 중국을 다녀온 사람이 1천만명을 넘어서서 전체 해외 방문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을 넘어선다고 한다. 한중일 삼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거나 무역관계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국제사회가 글로벌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경이 사라진 지도 오래 되었다. 사람과 물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세계 사람들은 거대한 하나의 지구촌 사회를 이루면서 살게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통해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세계 어느 구석이건 화면을 통해 만나게 된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서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하는 거리의 의미는 무의미해지니 셈이다. 더구나 같은 동북아 지역에 살고 있는 한중일 삼국 사람들의 거리감은 거야 말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해외를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꼈을만한 의문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은 ‘동북아시아인’인가? 라는 질문인데, 예를 들어 해외 여행 중에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서로 ‘서유럽’에서 왔는지 ‘남부유럽’에서 왔는지,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는지 혹은 ‘서남아시아’에서 왔는지를 물어보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동북아’에서 왔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 박세정(여의도여자고등학교 3년)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언제나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중국인인가요?’ 아니면 ‘일본인인가요?’였다. 왜 그럴까? 왜 세계 사람들은 한국인의 모습에서 ‘동북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독일인에게 유럽인이라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사우디 사람에게서 중동인이라는 모습을 동시에 보면서, 왜 한국인에게서는 ‘동북아인’이라는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지리적으로 인접한 나라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세계화시대에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으니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으로부터 또 일본의 선진경제로부터 우리는 많은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마친가지로 중국과 일본 경제 역시 한국으로부터 얻게 되는 도움이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일본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는 청년들도 꽤 많다고 한다. 예전보다는 조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주요 백화점마다 줄을 길게 늘어선 중국인들의 풍경도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한중일 삼국은 서로를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해서 싫어 한다기 보다는 정치적인 얘기나 군사적인 얘기만 나오면 상대방에서 매우 민감해지고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곤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에 의한 과거 식민지배와 같은 역사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고, 독도나 이어도 같은 영토 문제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또 서해안에서 중국 어선들이 조업을 위해 우리 영해를 시도 때도 없이 넘어서는 먹고사는 문제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웃에는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하는 것 같다. 하나는 이웃해서 살기 때문에 서로 자주 교류하고 부대끼다 보면 서로 정도 들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이웃해서 살기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싸울 일도 많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이해가 깊어지는 이웃이 만들어지고, 또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다투는 이웃이 만들어 지는 것일까? 한중일 삼국은 동북아라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서로 감싸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려는 마음이 더 커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동북아라는 마을뿐만 아니라 지구촌에는 여러 가지 국가들로 이뤄진 다양한 마을이 있다. 이중에는 잘 소통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이웃 국가들이 있고, 서로 배척하고 감정을 상하는 말을 주고받는 이웃 국가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배려와 상호존중의 정신이 생겨나는지 잘 참고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 유럽에서는 브렉시트 문제로 많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럽 국가들은 서로 이해하는 이웃 국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동북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모두 동북아인이다. 내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동북아인’이라는 사실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곳에서 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5월을 맞이해서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동북아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동북아인이라는 깨달음은 한중일 삼국이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동북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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