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들어 회복 추세가 뚜렷했던 은행권의 실적이 4분기에 급격히 나빠졌다.
모뉴엘, 대한전선, 동부건설 등 기업대출의 부실에 이어 대규모로 사들였던 포스코 주식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평가손실마저 입었다.
가계대출을 열심히 늘려 벌어놓은 이익을 기업금융 부문에서 다 까먹는 모습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신한, 우리,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2013년 분기당 평균 1조1천억원 가량에 불과했으나 작년 1분기에 1조4천여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분기와 3분기에는 각각 1조6천억원 안팎까지 증가했다.
실적 호조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에 힘입은 가계대출의 급증이었다.
저금리로 인한 이자 마진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이 각 은행마다 급증하면서 이익이 크게 늘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율은 각각 8%와 9%, 우리은행은 12%에 달한다.
그러나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추정 결과,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지난해 4분기 7천944억원에 불과해 8천억원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1조6천억원 가량인 3분기와 비교하면 '반토막'이 난 셈이다.
3분기 4천500억원 가량이었던 KB금융의 순이익은 4분기에 2천50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신한금융의 순이익도 6천300억원에서 3천600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3분기에 2천700여억원이었던 하나금융 순이익은 4분기에 반토막도 못 되는 1천100억원 가량으로 줄고,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2천200억원에서 700억원으로 3분의 1로 줄어들 전망이다.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기업금융 부문의 부실이다.
동부건설의 법정관리 사태로 인해 은행권이 떼이게 될 돈은 1천억원을 넘는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한전선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채권단이 출자전환으로 가지고 있던 총 7천억원 어치의 대한전선 주식가치도 폭락했다. 대출 보증을 섰던 무역보험공사가 지급을 거절하면서 모뉴엘에 빌려준 돈 3천여억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더구나 2008년 말 금융위기 후 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 자사주와 대규모로 맞교환한 포스코 주식도 지난해 4분기에 20% 가까이 폭락했다. 은행마다 수천억원 어치의 포스코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주가가 폭락한 만큼 손실이 난다.
문제는 은행권이 이 같은 기업 부문의 부실을 예방하지 못하고 자꾸만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 2010년에 은행권 순이익이 급감한 것은 건설, 해운, 조선 등 기업 부문의 대규모 부실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2008년 1조9천억원이었던 KB금융의 순이익은 2009년 5천여억원, 2010년 1천억원으로 급감했고 다른 은행도 사정은 비슷했다.
2012년 7조3천억원에 육박했던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이 2013년 4조5천여억원으로 줄어든 데도 STX, 쌍용건설, 동양그룹 등 기업대출의 부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개인들이 꼬박꼬박 이자를 내면서 원금을 갚는 가계대출 부문에서는 꾸준하게 이익을 벌어들이면서, 기업금융 부문에서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 이익을 다 까먹는 일이 반복되는 셈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서민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아직 높지만 기업들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특히 모뉴엘, 대한전선 등의 분식회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대규모 대출을 해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조 대표는 "은행들은 저금리로 인한 예대마진 탓을 하며 앞다퉈 예금금리 낮추기에만 앞장서고 있는데, 그에 앞서 여신심사능력을 높여 기업 부실 줄이기부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