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정보통신망 납품사업에 특정업체 밀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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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정보통신망 납품사업에 특정업체 밀어주기?
  • 최인수 기자
  • 승인 2020.09.0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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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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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최인수 기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정보통신망 관련 설비를 공급·설치하는 사업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제품만 납품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정 회사 제품을 납품하도록 요구하는가 하면, 해당 회사 제품이 선정될 수 있도록 사업제안요청서에 독소 조항을 넣는 등  이와 관련한 민원과 제보가 넘쳐났지만 코레일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코레일과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인 A사 간 유착 의혹이 생긴 건 지난 2018년 부터로 코레일은 그해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8건의 정보통신 관련 장비 납품·설치 사업을 발주했다.

낙찰금액을 기준으로 약 2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모든 사업에는 A사의 네트워크 스위치 제품이 돼 국내 10곳에 달하는 스위치 업체 중 A사 제품이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타사 제품과 비슷하고 절대적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A사가 코레일 납품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배경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코레일이 ‘적격심사 입찰방식’과 ‘독소 규격’ 등 크게 두 방법을 통해 A사를 푸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적격심사 입찰방식은 업체가 가격만 써서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입찰 참여자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부터 기술 능력과 실적, 입찰가 등을 종합 심사해 낙찰자를 결정한다. 제품 규격이나 기술에 대한 평가를 생략하고 급하게 낙찰자를 선정해야 하는 경우에 이 방식을 채택하는 게 보통이다.

이와 관련 한 통신 업계는 “코레일이 적격심사 외 방식으로 발주한 사업의 경우 기초가격의 60~70%대에 낙찰 가격이 정해지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며 “코레일이 발주한 정보통신망사업이 급하게 발주 된 상황이 아님에도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적격심사 방식을 고수한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적격심사 방식을 고집하는 배경을 A사 밀어주기와 연관 지어 보는 시선이 많다. 코레일은 그동안 사업을 발주할 때 주로 ‘협상에 의한 계약(제안평가)’이나 ‘기술·가격 분리 입찰’ 방식을 채택해 왔다. 이 경우 낙찰자가 정해진 뒤에는 해당 업체가 제안한 제품을 변경하기 어렵다. 반면에 적격심사 방식은 그렇지 않다. 가격을 평가해 낙찰자를 정해 놓고 납품될 제품은 언제든 변경할 여지가 있다.

정보통신망 장비 납품사업에 참여했던 B사 관계자에 따르면 코레일은 낙찰자가 정해지기 전 낙찰이 유력한 자신의 회사에 납품할 제품의 규격 정보 일체가 담긴 ‘물품공급확약서’를 요구했다. 이 확약서는 낙찰자가 정해진 뒤 제출받는 게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 B사 관계자는 “아직 낙찰자로 선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계약부서도 아닌 발주부서가 확약서를 요구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코레일의 제안요청서상 독소 규격이 ‘A사 밀어주기’의 또 다른 한 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트워크 처리량 40GB 이상 지원’과 ‘인터페이스 모듈을 장착할 수 있는 슬롯 11개 이상’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입찰에 참여한 한 통신·보안장비 공급업체 C사 관계자는 “이는 A사 특유의 규격으로, 대다수 제조사는 이런 규격이 없어 입찰에 참가할 수 없다”며 “설사 규격을 충족시키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없어 A사에 현저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규격이 지나치게 과도한 사양이라고 입을 모았다. C사 관계자는 “현재 철도 환경상 확장성을 고려하더라도 ‘40GB’와 ‘11슬롯’은 불필요한 규격”이라며 “코레일 측이 A사 제품 사양을 먼저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제안요청서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통신·보안장비 업체 D사 관계자도 “A사 제품이 납품되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사양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코레일 측이 대놓고 A사 제품을 사용하라는 힌트를 줬다는 지적도 있었다. 코레일이 발주한 한 사업의 제안요청서에는 ‘백본스위치는 현재 운영 중인 경부선 1단계(광명역·천안아산역), 호남고속선 1단계(공주역·익산역·정읍역·광주송정역)와의 호환 및 운용, 보수를 보장해야 한다. 현재 해당 노선에 적용된 제품을 투찰 전에 확인하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 명시된 경부선 1단계와 호남고속선 1단계에는 모두 A사 제품이 적용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D사 관계자는 “네트워크 스위치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통신규격이 적용돼 어느 제조사 장비라도 상호 통신 및 호환이 가능하다”며 “A사의 제품을 납품하라는 메시지를 입찰 참여 업체에 전달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입찰 중 이의 수렴 기간에 많은 이의가 제기됐지만 A사 독소 규격에 관한 이의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B사 관계자는 “특정 공급자나 제품만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는 이의가 제기될 경우 대부분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이런 의견을 수렴하는 게 보통”이라며 “그러나 코레일은 ‘향후 확장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A사 독소 규격에 대한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석연찮은 상황이 3년 넘게 반복되자 업계의 불만은 상당히 커졌다. 사업 참여 기회를 침해당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사 제품을 납품하는 조건으로 계약에 참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A사가 특정 공급·설치 업체와 한 세트로 움직이고 있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C사 관계자는 “A사는 현재 특정 공급업체를 통해서만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며 “A사를 중심으로 뭉친 업체들이 사실상 ‘턴키’ 방식으로 코레일 발주 사업에 입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D사 관계자도 “업계에서는 코레일 발주 사업에 입찰하려면 A사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기정사실화된 상태”라며 “이런 얘기를 듣고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A사에 제품 견적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코레일 감사실에도 많은 업체의 입찰 비리 의혹과 관련한 민원과 제보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감사실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잇따른 의혹에 대해 코레일 측은 현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감사실에 다른 사업 낙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투서는 들어온 바 있지만, A사 관련 사업은 그렇지 않았다”며 “민원을 접수하거나 검토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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