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발 30주년 맞는 아제르 바이잔 호잘리시 대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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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발 30주년 맞는 아제르 바이잔 호잘리시 대학살 사건
  • 피터조 기자
  • 승인 2022.02.2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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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379명 추방, 613명 피살, 487명 부장, 1275명 포로로 잡혀

다음 기사는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한 기사 이다.—편집자

2022년 2월 26일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아르메니아의 침략 당시 호잘리 도시에서 아르메니아 군대가 저지른 대학살의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0년대 초 아르메니아의 침략으로 인하여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20%가 점령되었고, 100만 명이 넘는 아제르바이잔인이 아르메니아에 의하여 인종청소를 당하였습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선두 키 큰분)이 수도 바쿠시에서 호잘리 희생자 추무 행군에 참여를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선두 키 큰분)이 수도 바쿠시에서 호잘리 희생자 추무 행군에 참여를 하고 있다.

대학살 이전에 아제르바이잔의 카라바흐 지역에 위치한 호잘리 도시에는 7,000명의 인구가 살았습니다. 1991년 10월부터 이 도시는 아르메니아 군대에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1992년 2월 25일 밤부터 26일까지 아르메니아 군대가 구소련의 보병 경비연대 366호의 도움을 받아 호잘리에 대한 대규모 포격 후 호잘리를 점령하였습니다. 침략자들은 호잘리를 파괴하였고, 특히 도시의 평화로운 인구에 대한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호잘리 대학살 사건의 주요 내용
호잘리 대학살 사건의 주요 내용

호잘리 대학살의 결과로 도시 주민 5,379명이 강제 추방되었고, 어린이 63명, 여성 106명, 노인 70명을 포함한 613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였고, 가족 8가구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487명이 부상을 입었고, 1275명이 체포되어 인질로 잡혔습니다 (68명의 여성과 2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50명의 운명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Sunday Times”, “Financial Times”, “Times”, “Izvestiya”, “Le Monde”, “Crual L' Eveneman”과 같은 외국 뉴스 매체들은 호잘리에서 목격된 끔찍한 장면들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Times” 신문은 1992년 3월 4일에 다음과 같이 기사를 냈습니…  수많은 사람들의 몸이 잘려 나갔고, 어느 한 소녀는 머리만 남아 있었다.”

1992년 2월 아제르바인잔 호잘리시에서 한 소녀가 알메니아가 자행한 대학살을 피해 동생을 안고 있다.
1992년 2월 아제르바인잔 호잘리시에서 한 소녀가 알메니아가 자행한 대학살을 피해 동생을 안고 있다.

아르메니아가 저지른 호잘리 대학살은 국제 인도법 및 인권법, 특히 1949년 제네바 협약, 집단 학살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고문 및 기타 잔혹한, 비인도적인 혹은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아동 권리에 관한 협약 및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위한 협약에 대한 심각한 위반입니다.

호잘리 학살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
호잘리 학살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

아제르바이잔 군 검찰청이 시행한 조사는 수많은 아르메니아 군인과 다른 관계자들이 호잘리 대학살에 연루된 것을 완전하게 입증하였습니다. 이 조사는 집단 학살, 고문, 인구 추방, 무력 분쟁 중 국제 인도법 위반 및 기타 형사 범죄에 대한 아제르바이잔 형법 조항에 따라 고소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0년 4월 22일의 판결에서 유럽 인권 재판소는 호잘리에서 저질러진 범죄와 관련하여 중요한 결론을 내렸으며, 호잘리에 대한 침입을 수행한 사람들의 행동을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특정 중력 행위 또는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16개 국가의 국가입법기관은 호잘리의 민간인 학살을 가장 강력하게 비난하고 호잘리의 비극을 대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 인정하는 결의안과 선언을 채택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이전 지도부의 일부 대표자들과 그 국가의 다른 고위 정치 및 군사 관리들이 직접적으로 호잘리 대학살에 참여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호잘리 학살에서 노인과 아기가 살아 남았다
호잘리 학살에서 노인과 아기가 살아 남았다

당시 아르메니아 국방 장관이자 전 대통령인 세르즈 사르키샨은 영국 언론인 토마스 드발에게 다음과 같이 자기 죄를 냉소적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호잘리 이전에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손을 들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런 고정 관념을 깨뜨릴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국가 차원에서 취해지는 일관된 조치와 현존 국제법적 체계가 호잘리의 민간인에 대한 중범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편 호잘리 대학살 희생자들의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았습니다. 최고사령관의 지휘 아래 아제르바이잔의 용감한 군대는 2020년에 44일간의 애국 전쟁 끝에 아르메니아의 침략을 종식시켰고, 이로써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무결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시에 세워진 호잘리 대학살 기념탑
아제르바이잔 바쿠시에 세워진 호잘리 대학살 기념탑

앞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독립, 주권 및 영토 보전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국가의 기초를 형성하는 이러한 절대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란 주의 사상을 장려하는 세력들은 적절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입니다. 한 마디로 호잘리 대학살을 포함하여 아제르바이잔 국민과 국가에 대해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정의가 내려질 것입니다.

호잘리 대학살 규탄 추모 행열집회가 아제르바인의 수도 바쿠시에서 열리고 있다.
호잘리 대학살 규탄 추모 행열집회가 아제르바인의 수도 바쿠시에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