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외교시장은?] 일본 장기화되고 있는 의약품 부족 문제
상태바
[지금 외교시장은?] 일본 장기화되고 있는 의약품 부족 문제
  • 이해나 기자
  • 승인 2024.06.02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급격히 생산량 확대 , 제조 비리 등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 .
 약가 시스템 평가, 규제 강화,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등 대응 방안 필요 

 2024년 1월 지진이 발생한 노토반도가 위치한 호쿠리쿠 지역(도야마, 이시카와, 후쿠이 등 3개 현)은 일본 유수의 의약품 제조기업들이 밀집된 곳이다. 특히 도야마현은 ‘약(くすり)의 도야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역 의약품 생산액은 2022년 6078억 엔으로 전국에서 5번째로 큰 규모이며, 인구당 의약품 생산액 및 제조업체 수는 전국 1위이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여러 의약품의 생산 중단 또는 제한이 이뤄졌다. 특히 의료용 안약 점유율 1위인 산텐제약의 녹내장 및 안압상승증 치료에 사용되는 ‘코솝트미니 복합점안제’는 출하 정지가 4월까지도 이어진 상황이다. 산텐제약은 지진 발생 이전 노토 공장에서 연간 생산량 4억 개 중 3억 개의 점안제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은 일본 내 의약품 공급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한 요인이 됐지만, 사실 일본에서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는 그 이전부터 장기적으로 진행돼 온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이다.

장기화되는 의약품 부족 문제

2일 KOTRA 고범창 일본도쿄무역관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제약단체연합회 조사에 일본 내에서 제조업체가 모든 주문에 응할 수 없는 ‘한정적 공급’, ‘공급 중단’이 된 의약품은 2024년 3월 기준 4064개 품목에 달했다. 이는 약가 등재된 전체 의약품의 23.9%며, 제네릭 의약품으로 한정할 경우 32.1%까지 상승한다.

 

                                   <일본 의약품 공급 부족 현황>

[자료: 일본제약단체연합회]
[자료: 일본제약단체연합회]

 

이런 상황은 국회에서도 다뤄졌다. 2023년 11월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이사 신이치(伊佐進一) 중의원 의원은 의약품 부족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 질의하며 실제 경험을 예로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이 감기에 걸렸는데, 처방받은 기침약이 약국에 없었고 처방전을 들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겨우 한 약국에서 어른용 약을 잘게 부숴서 아이용으로 조제해 줬다는 이야기였다.

2023년 8~9월 일본의사회가 전국 570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약품 공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74%가 '약국으로부터 재고 부족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원내 처방 시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 상위 10개 품목 중 6개 품목은 진해제, 거담제, 감기약이 차지했다. 이외에도 지혈제, 당뇨병 치료제, 항우울제, 항균제 등의 부족을 호소하는 의료기관이 많았다. 진료과목별로는 이비인후과와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92%가 약품 부족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2023년 8~9월 설문조사: 일본 내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원내 처방) 상위 10개 품목>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의 원인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의 구조적 원인>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은 대내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2021년 이후 잇따라 발생한 제약사의 품질관리 불량 문제를 들 수 있다.

2020년 고바야시화학공업(후쿠이현)이 제조한 손발톱무좀 등 치료제에 수면유도제 성분이 혼입돼 건강 상의 피해가 드러나면서 2명이 사망했다. 이후 다른 제약사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적발돼 2023년 4월까지 총 15개 제약사가 업무정지 또는 업무개선 명령을 받으며,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크게 감소하게 됐다.

           <2021~2023년 5월 행정처분을 받은 제약사 리스트>

          

이런 품질관리 불량 문제는 '제네릭 의약품(후발의약품) 장려 정책'에서 촉발됐다고 평가된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에 따라 불어나는 의료비 억제를 위해 2013년 47%였던 제네릭 의약품 사용 비율을 2020년까지 유럽과 미국 수준인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제네릭 의약품을 일정 비율 이상 처방하는 병원, 약국의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 등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많은 제약사들이 제네릭 수요에 대한 기대를 안고 증산을 서두르게 됐다. 

하지만, 증산을 위해서는 제조설비 확충, 원료의약품 조달, 전문 인력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고, 급격히 생산량을 확대하다 보니 품질관리가 허술해져 결국 잇따른 제조 비리로 이어지게 됐다. 

                             

           <일본 제네릭 의약품 기업·품목 수, 비중 추이>

                    (단위: 개, 건, %)

 

아울러, 일본 제네릭 의약품 시장은 제약사들이 규모가 작은 기업이 많은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이다. 2023년 기준 제네릭 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제약사 105개사 중 86개사인 약 82%가 중소기업이다. 또한, 제네릭 의약품을 공급하는 190개사 중 9개사가 시장(공급량 기준)의 50%를 점유하고 나머지 50% 시장을 규모가 작은 181개사가 분할하고 있다. 이런 소규모 제약사들이 많은 일본 제네릭 시장은 부족한 의약품 생산을 급격히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더해, 제네릭 의약품 단가가 매년 인하되는 정부의 약가 개정으로 제약사들의 이윤이 크게 줄어 적자 상태가 지속됐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생산을 확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약가 시스템 평가, 규제 강화,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등 대응 방안필요 

 의약품 부족은 비단 일본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 무역 제한, 제네릭 저가정책, 품질 이슈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세계적으로 의약품 부족이 심화됐다.

미국 보건시스템약사협회(ASHP, American Society of Health-System Pharmacists)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미국 의약품 부족 수는 323개로 2018년 이래 200개 이상의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이 만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항응고제, 간질 치료제,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을 포함한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유럽 제약 협단체인 PGEU(Pharmaceutical Group of the European Union)가 2023년 말과 2024년 초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자국에서 의약품 부족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유럽 국가 중 42%는 약 500개 이상의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 국가 중 대다수(65%)가 이전 12개월에 비해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23%)와 긍정적인 개선이 있었다(12%)고 답한 국가는 소수에 그쳤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6월 '2023년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제네릭 지원을 위한 의약품 상환가격 조정 등 약가 시스템 평가, 품질관리 위반을 줄이기 위한 규제 강화, 필요시 원재료의 공동 조달 및 투명성 개선을 통한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등 대응 방안 제시했다.

특히 제네릭 의약품의 원료 수입의 중국, 인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공급망 다각화 움직임은 한국 기업에도 시장기회가 될 수 있다. 2022년 3월 기준 제네릭의약품 원료의 국가별 수입액은 중국(63.0%), 인도(20.9%), 한국(8.9%), 이탈리아(3.1%), 캐나다(1.1%) 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