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상용화 눈앞인데 법제도 정비는 '게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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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상용화 눈앞인데 법제도 정비는 '게걸음'
  • 정상진 기자
  • 승인 2016.03.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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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 책임소재 등 쟁점 수두룩…현상태서 상용화하면 '대란'

[코리아포스트  정상진 기자]      구글이 제작한 자율주행차가 지난달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 인근에서 시험 주행을 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이 차는 차로에 있는 모래주머니를 피해 방향을 틀었다가 제자리 돌아오는 순간 뒤에 오던 버스 옆면을 살짝 들이받았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운전자가 타고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자율주행차의 컴퓨터 프로그램과 운전자 모두 버스가 길을 양보하리라 판단했지만 오판이었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교통국이 제공한 사진으로 구글 자율주행차 렉서스 SUV의 훼손된 모습. 이 자율주행차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공영버스가 주행중이던 차선으로 천천히 들어가 버스 오른쪽을 들이받았다. 사고 장면은 버스 장착 카메라에 녹화되었다.

구글 측은 "우리 차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구글은 최근 6년간 자율주행차로 약 330만㎞를 시험주행하는 과정에서 17건의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운전자의 조작 없이 도로 상황을 스스로 분석해 목적자까지 주행하는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임박함에 따라 관련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이대로 자율주행차가 도로로 쏟아져나오면 사고 발생시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

◇ '운전자 없는 차' 사고나면 누가 책임지나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가장 큰 법적 쟁점은 민·형사상 책임 소재다. 형사적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적용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핵심은 운전자의 주의 의무 위반 여부다. 이는 법원에서 유무죄나 책임의 정도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는 자율주행차에 이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고를 유발한 경우라도 운전을 하지 않은 탑승자에게 주의 태만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문제도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사망 또는 부상하게 한 경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자동차의 구조상 결함이나 기능상 장해가 있으면 면책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의 운전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에 포함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또 판례상 손해배상 책임은 '행위 책임'이 아니라 '위험 책임'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운전 과실이 없다 하더라도 운전자의 완전한 면책은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자동차의 구조상 결함 또는 기능상 장해 문제를 둘러싼 운전자와 제조사 간 책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법은 소비자에게 결함의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 전자적 장치와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게 얽힌 자율주행차에 대한 기술적 결함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7일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차량은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1호 허가증을 받고 정부세종청사 인근 도로에서 자율주행 시험주행을 했다.
자율주행차의 프로그램이 해킹돼 운전자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느냐도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 "자율주행차 논의 게걸음…법·제도 정비 서둘러야"

자동차업계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기를 대체로 2020년 전후로 정도로 보고 있다. 자율주행차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구글은 2017년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대자동차가 자율주행차로 개발 중인 제네시스의 실제 도로 임시운행 허가를 받았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업무보고에서 자율주행차를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7대 신산업'에 포함하고 2020년까지 상용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보였다. 하지만 산업적 추진 노력과는 반대로 해당 산업의 부흥을 뒷받침할 법·제도 정비에는 지나치게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에서는 각종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연구팀이 꾸려지고 여기에 자율주행차 문제도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교통법규를 담당하는 경찰청도 연구팀에 참여할 방침이다.  경찰청은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머지않은 장래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술적 측면과 법제 등을 검토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현행법대로라면 민사적으로는 자율주행차의 탑승자가 전적으로 배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소비자가 위험부담을 감소하고 값비싼 자율주행차를 구입하겠냐"고 반문했다. 법조계에서는 우선 자율주행의 단계에 따라 법적 책임을 달리 부과하는 방식으로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의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동화된 요소가 없는 '레벨 0'부터 운전시스템이 완전 자동화된 '레벨4'까지 5단계로 자율주행차를 구분하고 있다. 이 자율주행 정의는 많은 나라에서 공유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자율주행 정의를 토대로 운전자의 민·형사 책임 정도, 운전자와 제조사 간 책임 비율 등을 규정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특성상 제조사의 배상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박순환 박사는 "사고 발생시 자동차 제조사가 지는 의무는 제품 결함에 대한 책임에 한정돼 있는데 책임 범위를 현실화하기 위해 자동차 소유자뿐 아니라 제조사에도 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행기의 블랙박스 같은 장치를 자율주행차에 설치해 운전자 과실 또는 기기 결함 여부 등을 규명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국회를 중심으로 더욱 다양한 법·제도적 대안을 발굴하고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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