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포스트 피터조기자] 루벤 아로세메나(56) 주한 파나마 대사는 국내 금융당국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를 조사한다면 파나마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아로세메나 대사는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법적인 목적으로 자행된 행위라고 한국 정부가 판단해 관련 정보를 요청한다면 모든 정보를 성심껏 제공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씨는 일명 '파나마 페이퍼스'라고 불리는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1977∼2015년 기록을 담은 조세회피처 자료에 이름을 올렸다. 노씨 외에도 한국인 195명이 이 자료에 거명됐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이 자료를 토대로 취재한 결과, 노씨가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3곳의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설립한 사실을 확인했다.
아로세메나 대사는 한국인이 연루된 사실에 대해 "뉴스를 통해서 아는 정도지만 노씨뿐 아니라 다른 건에 대해서도 요청이 오면 협조하겠다. 파나마 정부는 불법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거명된 건수는 1천150만건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전·현직 각국 정상과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대거 포함되거나 연루됐다.
공개되자마자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는 파나마 페이퍼스에 거명되면서 사임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도 자국에서 정치적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로세메나 대사는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나마 정부가 지난 5년간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사법·경제시스템을 국제적인 기준에 걸맞게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이 엄청난 스캔들(The big Scandal) 탓에 커다란 오명을 얻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일개 개인회사에서 저질러진 일 때문에 국가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어 안타깝다. 파나마 정부나 기관이 아니라 로펌이 개입된 스캔들이기에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명칭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 자료에는 DCB 파이낸스와 피닉스 커머셜 벤처스라는 북한 회사도 등장한다. 이 가운데 DCB파이낸스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무기 거래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오른 금융회사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 행위는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이고, 우리는 국제법을 존중한다"며 "우리 법과 경제 시스템은 이런 불법적 행위에 자금을 대는 어떤 행위도 용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파나마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국의 금융 관행을 조사해 처방까지 제시할 조사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정부 당국에서 이미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고 아로세메나 대사는 말했다.
아로세메나 대사는 "살인과 같은 형사사건이 아니어서 엄청난 양의 문서를 검토해야 한다. 적어도 조사하는 데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며 "파나마는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적법한 절차를 거치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