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교통사고가 부른 뇌전증 논란…"마녀사냥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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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교통사고가 부른 뇌전증 논란…"마녀사냥은 안돼"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6.08.0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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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영목 기자] 경찰이 부산 해운대에서 대규모 교통사고를 낸 김모(53)씨가 사고 당시 의식이 있었다고 밝힘에 따라 뇌전증 환자의 차량 운전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미 일부 신경과 전문의들은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이후 뇌전증을 가진 사람 중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비쳐왔지만, 일부에서는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제한조치를 언급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5일 현재까지 발표된 경찰 조사결과를 보면 가해자 김씨는 사고 당시 뇌전증 발작으로 기억이 없었다는 당초 주장과 달리 전형적인 뺑소니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은 사고현장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 분석결과를 이런 분석의 근거로 들고 있다.      

과거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뇌에 있는 신경의 전기적 질서가 깨지면서 발작증상이 일어난다. 증상은 신체 특정 부위에 한정되는 '단순부분발작'부터 온몸이 다 떨리는 '전신강직간대발작'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뇌전증의 증상을 두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논의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가해자인 김씨의 발이 자동차 가속페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핸들 조작이 계속됐다는 점에서 뇌전증 발작증상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자신을 뇌전증 전문가라고 밝힌 한 의사는 페이스북 글에서 "뇌전증 환자의 발작증상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핸들이 옆으로 급격하게 꺾이면서 가로수 등에 부딪히는 형태로 발생한다"며 "김 씨처럼 앞으로 고속주행을 하는 형태는 뇌전증 발작보다는 졸음운전에 가까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한뇌전증학회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학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 운전자의 경우 당뇨,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지병이 있어 교통사고의 원인 불분명하다"면서 "당뇨약에 의한 저혈당 증상도 의식 소실과 이상행동, 뇌파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어 사실상 뇌전증 발작과 구별하기 어렵고,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가는 '고혈압성뇌증'도 기억장애, 정신혼란, 졸음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김씨의 주장대로 그 당시 정신을 잃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가려져야 한다고 학회는 강조했다.

홍승봉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은 "이번 사고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뇌전증 및 운전 중 의식소실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들의 교통사고의 위험도를 과학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뇨와 고혈압이 동반된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 한 건을 두고 마치 뇌전증이 사회생활을 못 하게 하는 심각한 질환인 것처럼 포장돼 마녀사냥처럼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약 30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으나, 약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고 운전면허 결격사유 규정도 명시돼 있으므로 제도를 잘 관리하는 방향으로 사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방 자동차운전면허 사무처리요강에 따르면 최종 발작 후 2년이 지나지 않았고 운전에 지장이 없다는 전문의의 진단서를 제출하면 뇌전증 환자도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이병인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비상식적인 편견은 모든 나라에서 아직도 남아 있다"며 "특히 유교적 사상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뇌전증의 약물치료가 과거와 달리 매우 전문화되고 환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뇌전증 환자까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주건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환자라면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야 하고 '뇌전증 일기 쓰기' 등을 통해 엄격한 자기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또 온라인을 통해 뇌전증 관리 요령을 직접 터득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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