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5개년 개발계획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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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5개년 개발계획 실행
  • 유희진 기자
  • 승인 2016.11.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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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부족 해결, 실업률 대폭 감소 등 기여

[코리아포스트 유희진기자]  알제리는 지난 11월 1일  독립  62년을 맞았다. 본지 코리아포스트는  알제리 국경일 축하 특집을 마련하고 먼저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에 대해 소개한다.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1937년 3월 2일에 태어나 1956년 고등학생 시절 민족해방전선 (ALN)에 입대했다. 그는 고향인 알제리 서부지역에서 장교로 근무 후 참모진에 합류한다.

이어 1960년 알제리 극남지역의 말리 국경  책임자가 되어 프랑스의 알제리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여러 정책에 기반되는 조치들을  내놓았다.

 

 

 

 

 

 

 

 

1962년 독립 직후 부테플리카는 약관 25세에 청소년 체육  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년 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 1979년까지 역임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알제리의 외교정책은 국제법 존중과 전세계 정의 특히 식민주의 대항에 대한 지지라는 기본적 원칙에 기반함에 따라 외교부 장관으로써 부테플리카는 알제리가 개발국 사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대화상대국이라는 핵심적 위치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1974년 제29차 유엔총회 의장국으로써의 알제리에 대한 만장일치 투표야 말로 부테플리카의 외교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엔총회 의장국으로써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은 남아공 정권에 대한 유엔총회 참여정지와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부이다. 두번째 주요 업적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지도자  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할 수 있게 힘 쓴 점이다.

1978년 후아리 부메디엔 대통령의 사망에 이어 부테플리카는 알제리를 잠시 나와 있었으나 국가의 추이를 가까이 지켜보았다. 1987년 1월 정치개혁과 1988년 다당제 수립 직전 알제리로 돌아왔다.

1994년 국가 과도기 시절 정부수반의 자리를 제안받는다. 이어 1999년 4월 알제리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2004,2009,2014년  연임한다.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평화, 안전, 안정을 복구하는데 힘쓴다. 이를 위해 국민투표를 통해 알제리 대다수 투표자에게 지지받은 시민 화합을 위한 입법을 1999년 9월 16일 수립한다.

집권 1기동안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정부구조, 외교, 경제, 법, 교육을 포함한 대대적인 개혁안을 단행하였다. 집권 2기에서 그는 타마직어 (베르베르어)를 제2 국가어로 합법화하기로 결정하였다.

2005년 9월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국가 대화합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 80퍼센트 이상의 알제리 국민은  테러와 폭력의 극단주의를 종식하고 평화와 화합, 국가 재건의 길을 여는 평화와 민족대화합을 위한 헌장을 채택하였다.

2011년 집권 3기의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과 개발을 위한 새10년의 노력을 신장하고 주변 국가가 직면한 위협과 소용돌이에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 사회 개혁을 수립하였으며 이는  2016년 2월 광범위한 국가협의의 정점인 새 헌법의 채택으로 마무리되었다.

경제분야에서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3단계 5개년 개발계획 실행으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 공업, 농업, 서비스 분야는 말그대로  탈바꿈하였으며 주택부족문제가 해결되고 실업률이 대폭 감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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