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프로세스의 북한인권에의 적용가능성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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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프로세스의 북한인권에의 적용가능성 검토
  • 이삼선 기자
  • 승인 2014.11.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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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평화회의 토론회 서보혁 서울대교수 발표문

북한은 지난 11월 8일 억류중 이던 케네스 배와 매튜 밀러를 석방하고 한국에서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미망인 이휘호 여사가 방북을 준비중인 보도 등 북미관계와 남북의 화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앞서 10월 31 부터 11월 1일간 춘천에서는 북한인권평화회의 토론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발표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의 발표문을 소개한다. 다음은 발표문의 요지이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북한인권에의 적용가능성 검토

냉전기 유럽에 존재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다자안보협력 경험을 탈냉전기 동아시아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난점이 존재한다. 둘 사이에는 다자안보협력에 관한 필요성, 경제협력의 증대 등 유사점도 있지만, 역사적.문화적 환경과 군사적 긴장에 바탕을 둔 다양한 양자관계 등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가운데서 6자회담의 일부 참여국들에서 동북아 역내 안보질서의 안정화, 주요 경제 및 안보 문제에 관한 다자적 협의, 상호 관심사에 대한 포괄 접근이 검토되고 있다

▲ 서보혁 서울대교수

 CSCE 경험으로부터 동북아 및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에 참고가 될 점을 생각해본다면, 먼저 지역적 혹은 세계적 차원에서 상호 견제 가운데서도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십(partnership)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둘째는 냉전기 유럽에서 동서 진영간 대립과 유사하게 오늘날 동북아에서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일종의 두 진영처럼 존재하고 있고 이들 간 상호 관심사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는 헬싱키 의정서 채택과 같이 상이한 이해관계를 포괄하여 병행 접근할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직 그 구상을 주도하거나 촉진할 국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점으로서 CSCE처럼 역내 다자협의가 만들어질 환경 조성이다. CSCE는 미소간 세력균형 속에서 냉전의 최대 대결 지역인 유럽에서 양진영간, 참여국들간 이익균형을 추구한 범지역안보협의체였다. 여기서 가장 큰 이익균형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상호관심사를 하나의 포괄적 틀(헬싱키 의정서)에 각각의 의제영역(일명 바스켓)으로 수용한 사실이다. 그런 거시적 구도를 추진하기할 수 있었던 것은 대량살상무기와 역내 재래식 감축을 위해 미소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회담과 미소, 중부유럽 관련국들간 상호균형감축(MBFR) 협상이 개시됐기 때문이다. 서독과 프랑스의 공산권 외교의 본격화, 전후 과거청산, 적대국간 관계정상화, 국경선 문제 해결도 CSCE 개시에 앞서 진행되었다. 말하자면 CSCE를 통한 역내 이익균형 접근은 세력균형에 바탕을 둔 역내 안정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전통적인 정치, 군사적 사안들의 타결 이후에 느슨하고 유연한 수준의 범유럽안보협의가 대서양에서 우랄 지역을 범주로 진행되었다.
넷째, CSCE 개시 이후 그것이 지속되는 데는 신뢰구축의 축적 속에서 합의 준수 및 그 범위 확대를 전개해나간 협상과 조정의 기술이 요구되었다. 그 과정에서 비동맹중립국들이 중재 역할을 하였는데, 동북아의 경우 아직 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북한인권문제를 대상으로 한 헬싱키 프로세스의 적용은 그 추진 여건의 미비(혹은 차이)와 목적론에 경도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성립조건과 관련한 측면이다. 현 동북아 국제질서를 미국 주도, 중국과 일본의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단다극체제라 한다면, 이는 헬싱키 의정서 채택 및 이행이 이루어졌던 유럽의 세력균형 질서와 대조적이다. 불균형적인 동북아 세력구도 하에 놓여있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체제생존을 추구하는 편승전략을 추구하다가, 적대관계 지속 하에서 핵능력 강화 이후에는 핵군축회담 주장에서 보듯이 일종의 準균형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생존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이전에 자국의 인권문제가 다자구도에서 다뤄지는 것을 수용할 가능성은 핵을 먼저 포기할 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제로에 가깝다. 북한이 2003년부터 유엔에서 진행된 일련의 인권결의와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말해주고 있다. 아래 북한의 입장은 인권문제를 안보의 시각에서, 혹은 국가주권 우위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전상태의 유지는 인권 보호증진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데서 주되는 걸림돌로 되고 있다. …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끊임없이 강화해 나가는 것은 공화국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며 민족의 강성번영을 위한 확고한 담보이다.
 
두 번째 조건인 이익균형의 측면에서 볼 때도, 현재 북한인권과 관련한 헬싱키 프로세스 적용 논의는 균형적이지 못하다. CSCE가 처음 소련에 의해 국경불가침, 내정불간섭 등 정치군사적 문제 중심으로 제안되었고, 이후 서방진영이 이를 수용한 가운데 인권 및 인도적 논의를 관철시켰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최근 일각에서의 헬싱키 적용 논의는 북한의 안보 관심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헬싱키 프로세스의 이익균형과는 거리가 있다. 다른 한편, 현재 북한문제에서 이슈간 위계 현상이 발견되는 것도 헬싱키 프로세스의 적용 가능성을 낮추어 보게 만든다.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제4차 6자회담 결과로서 9.11 공동성명은 북핵문제를 매개로 하여 양국간 혹은 다자간 공동이익을 제시한 것이지만, 헬싱키 최종의정서와 달리 인적 차원의 문제(Human dimension)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근 일각에서는 헬싱키 구상의 적용으로서 6자회담에서 북한인권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제네바합의와 9.11 공동성명이 공동으로 시사하는 바는 관련국들이 군사안보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은 물론 관련국들 모두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안보논의 틀에 인권을 동시에 다룰 때 발생할 부작용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북한인권문제를 북미관계 중심의 의제로 간주하거나 인권문제를 안보문제와 연계하는 것은 모두 적절한 접근이라 하기 어렵다. 만약, 대북 안전보장이 구속력 있게 제시되어 다자틀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다룰 경우에도, 헬싱키 프로세스가 시사하는 바는 처음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주로 한 ‘인적 접촉’을 전개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신뢰를 조성한 후, 인권문제를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교훈이다.
세 번째 성립조건으로 언급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의 측면에서도 동북아 역내 인권레짐의 창출은 현재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동북아의 공통점을 유교문화로 꼽는 이들도 있지만 유교문화의 실체는 각국마다 다양하고, 그것을 단일하게 파악할 경우 중화문화권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미국과 다른 동북아국가들이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리고 근세 동북아 국가들간 대립과 제국주의 식민통치 경험 및 그 유산은 동북아지역 차원의 공동체의식을 찾기 힘들게 한다. 특히, 미국이 동북아의 실제 행위자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할 때 역내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북한인권 논의는 할 수 없다.
현재 동북아지역은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역내 공동체의식의 위치를 점하려 경합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유럽의 헬싱키 프로세스는 현 북한인권문제에 이식하기보다는 미래 동북아 협력구도 창출의 전망 속에서 재구성한 후 그 적용을 검토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외에도 헬싱키 의정서 채택이 당시 데탕트 상황을 배경으로 유럽 질서에 대한 미소간 전략적 타협에 바탕을 두고 가능했다는 점도 현재 한반도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헬싱키 프로세스가 동구권의 인권개선에 미친 영향과 관련한 점이다. 헬싱키 프로세스가 동구권의 인권 개선에 촉매작용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때,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도 그와 같은 국제적 접근은 의미있는 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CSCE의 세 가지 성립조건, 저발달한 북한의 시민사회, 북한의 학습효과 등으로 인해 헬싱키 구도의 기계적 적용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 대북 전단 풍선 살포와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인권 개선을 촉진할 국제적 접근을 시도한다면 ①우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북한의 이익을 반영하는 ‘공정한’ 다자틀의 모색, ②대내적으로는 북한의 시민사회 형성, ③대외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 지원과 같이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이는 9.11 합의 존중을 전제로 새로운 북핵협상 틀 형성,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전망, 북한과의 경제협력 확대 등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관련국들의 입장을 살펴볼 때도 헬싱키 구도의 적용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동북아 각국의 우선적인 국가이익은 체제안전, 경제협력, 주변 환경 안정,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 등 다양하기 때문에 현재 북한인권에 관한 역내 동일한 인식과 접근법은 갖고 있지 못하다.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동북아 각국은 자국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북한인권은 그 하위 관심사로 남아있다. 헬싱키 구도를 북한인권문제에 적용하려는 의지를 공식 표명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헬싱키 구도가 10대 원칙에서 보듯이 전통적인 국제관계 원칙(주권평등, 내정불간섭 등)을 전제로 한 공동안보 추구 과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헬싱키 프로세스의 동북아 적용은 그 전제조건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초점을 둔 편향적 접근이다. 거기에 북한체제를 부정하는 일방적 접근 경향이 높아진 상황에서 헬싱키 접근의 의의마저 약화되어 있다. 또 미국내 탈북자의 수용은 북한인권법의 집행으로 볼 수 있어도 헬싱키 구도의 적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사자인 북한은 헬싱키 프로세스의 과정을 反面敎師로 삼고 있는 터에 미국에서 제기되는 헬싱키 구도의 적용에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헬싱키 구도는 기본적으로 특정 문제에 관해 특정 행위자를 표적으로 하는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현 단계에서 헬싱키 구도의 적용은 그 조건의 미성숙과 북한의 태도를 감안할 때 가능성과 타당성 양 측면에서 모두 낮다고 판단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인권문제에 헬싱키 구도를 적용하려면 그 조건의 조성과 북한을 포함한 역내 모든 국가들의 관심사를 포괄할 협의 틀의 형성이 우선적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한국은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해 유엔 등 주류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 없이 북한인권 개선을 주도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있다. 실질적 인권개선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헬싱키 프로세스 적용 그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서독과 미국이 보인 행동으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서독은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공산진영과 관계개선, 그 연장선상에서 동독과의 화해협력, 통일 전망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 등 세 가지 방향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공개적/비공개적, 양자적/다자적 방식으로 양독간 인도적 문제와 동독 인권 개선에 나섰다. 서독정부는 소련의 반대를 서방국가들의 지지로 막아내며 헬싱키 의정서에 국경선의 평화적 변경, 자결권 조항을 포함시켜 통일의 길을 열어놓았고, 인권 이행 논의 과정에서는 미소 대립으로 인한 회담 결렬 가능성을 막아내고 서방진영 내에서도 자국의 특수한 입장을 견지하며 동독과의 접촉을 확대하는데 노력하였다. 요컨대, 서독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역내 진영간 관계 및 양독관계 개선과 병행하였다. 이는 현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유사성이 있다.
서독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인도적 문제 및 동독 인권개선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였지 거기에 전적으로 의탁하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당국간 채널은 물론 교회와 언론, 국제인권단체 등이 동시에 가동되었다. 서독의 경험은 한국이 북한인권문제를 실질적.합리적 해결의 관점, 그에 따른 다양한 방법의 구사,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과의 병행, 통일의 전망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의 방향에서 접근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미국은 처음 헬싱키 의정서 채택까지 CSCE를 미소간 군사력 감축 등 소련과의 협상 채널의 하나로 간주한 대신 인권문제에는 무관심한 입장을 보였다. 카터 행정부 이후 미국이 헬싱키 인권 이행 프로세스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소련과의 안보 협상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유지하였다. 헬싱키 인권이행 프로세스를 보더라도 미국은 동구권 전체의 인권상황 및 인도적 문제보다는 주로 소련의 인권침해 상황에 집중하였고 그것을 소련과의 안보 협상에서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미국의 그런 접근은 헬싱키 구도의 성립조건과 다른 동북아 상황, 북미 적대관계 등과 더불어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공격적 대북 인권정책이 실질적 인권개선에 한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무조건적인 동조는 북인권 개선은 물론 전반적인 대북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핵심은 적대 진영간 상호 체제 존중 하에서 공동 관심사를 합의에 의한 점진적 해결을 추구한 점에 있다. 따라서 다자구도의 형성 조건이 유럽에 비해 크게 부실한 동북아에서 헬싱키 구도를 적용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정비되어야 할 것은 한반도 정전체제의 청산과 적대관계 해소이다. 물론 북핵문제의 타결과 북미 수교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한인권 논의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한국은 지역적인 틀에서 북한인권이 다뤄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촉진자 및 당사자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을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촉진자의 역할이란 다자 인권 틀이 북한인권문제를 공정하게 다루고 실질적 개선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함을 말하고, 당사자 역할이란 과거 서독처럼 평화적 국경 변경과 자결권을 다자 인권 논의에 반영시키는 한편,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해 북한인권 개선과 통일 준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헬싱키 프로세스는 많은 난제들 앞에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10대 원칙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준수하며 이행을 추진해나간 ‘헬싱키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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