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급락에 석유산업 '위기 봉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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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급락에 석유산업 '위기 봉착'
  • 이경열 기자
  • 승인 2014.12.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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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급 증가와 수요감요에 따른 유가하락 원인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50년만에 석유정제 능력 세계 6위에 오르며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킨 노력이 수년간의 실적부진과 함께 에너지패권 경쟁에 따른 유가급락의 와중에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촉발된 에너지시장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에너지 패러다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국내 정유사들은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  

석유산업은 전략물자로서 국가 에너지안보와 직결되는 산업일 뿐만 아니라 기초원자재로서, 주요 수출산업으로서 국내산업 발전의 토대와 국가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송연료 공급으로 국민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이다.  

위기에 처한 정유업계는 정부의 불합리한 시장개입과 규제 정책에서 탈피해야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소비자에게 돌려줬던 혜택을 다시 빼앗아 과거의 과점 체제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 정유사 실적부진 고착화…신용등급 하향·구조조정 바람

정유업계로선 영업이익률이 2.2%를 기록한 2010년과 2011년이 그나마 나았다. 정유4사는 2012년 4천19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해 영업이익률이 -0.3%를 기록했고 2013년에는 159억원의 적자로 영업이익률이 0.0%였다. 올해 1∼3분기에는 9천711억원의 대규모 적자로 영업이익률 -1.1%를 기록중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정유업계의 연간 적자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장치산업의 특성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필요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투자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게 정유업계의 볼멘소리다.  

이런 정유사들의 실적악화는 세계 경제 불황이나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경기위축에 따른 선진국들의 소비감소와 국내 정유사의 수출시장인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정제설비 신증설에 따른 공급 증가가 맞물린 구조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내 정유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며 사업 안정성이 크게 저하되자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국내 정유사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최근 SK이노베이션의 기업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한단계 내리기도 했다.  

이미 국내 정유사들은 실적악화에 따라 사업 및 조직 통페합, 인력 구조조정, 예산 삭감 등의 개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체마다 10∼20%의 조직 통폐합을 단행했고 예산도 20∼30% 삭감했다.  

정유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인건비 비중이 낮은데도 업체들은 현재 추가 인력 구조조정과 예산 삭감을 고려중인 단계다.  

정유업계는 지금처럼 경영악화가 지속되면 산업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정도라고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 셰일이 불러온 정제마진 하락…정제시설도 급증

눈앞에 보이는 정유업계 위기의 원인은 석유공급의 증가와 수요 감소에 따른 유가하락이 꼽힌다. 이는 정유사 수익의 원천이 되는 정제마진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의 유가하락을 촉발한 셰일가스 및 셰일오일 개발의 가속화는 국내 정유사로선 기회라기보다는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석유제품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셰일에너지 생산을 늘려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할 경우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정제마진 축소에 따른 정유사의 실적악화는 피할 수가 없다.  

세계 최대 셰일가스 매장국인 중국이 채취기술 개발에 성공할 경우엔 국내 정유산업의 대(對) 중국 수출실적도 하락하며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나프타 기반의 석유화학업계도 장기적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셰일가스 가공 후 나오는 에탄은 원유에서 정제하는 나프타를 대체할 수 있는 품목인데 그 제조원가가 나프타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중동과 아시아의 정제설비 신증설 경쟁도 국내 정유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2018년까지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정제설비 증설량은 하루 383만5천 배럴 규모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정제능력(하루 288만7천 배럴)의 1.3배, 지난해 한국 석유제품 수출량(하루 118만2천 배럴)의 3.2배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 정유사 수출물량 중 아시아 비중이 85%를 차지하고 있어 지리적 이점, 원유 수급능력 등에서 절대우위를 지닌 산유국과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수출 중심인 국내 석유산업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 정유업계 "가격통제 중심 정책기조 전환해야 할 때"

위기에 직면한 정유업계는 화살을 정부 정책에 돌리고 있다. 석유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여전히 규제 중심, 축소 지향적인 석유산업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고유가 상황과 비교해 국내 유가가 뚜렷이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만큼 정책목표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계에서는 1차 에너지원인 석유보다 2차 에너지원인 전기 가격이 오히려 낮은 가격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을 잘못된 에너지 정책의 한 단면으로 지적한다. 석유사용이 가능한 농가 발전기, 가정용 온열기 등의 에너지원을 전기로 대체함으로써 전력 사용이 과도하게 늘어나며 비효율적인 에너지 사용구조를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산업 정책이 근거없는 정유사 폭리 논쟁에 편승해 산업육성 차원의 관점보다는 2011∼2012년 유가급등 당시의 물가관리 위주의 가격통제 정책 중심으로 수립돼 있다는 점은 정부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에서도 알뜰주유소 확대, 전자상거래 촉진, 혼합판매 활성화 등 3대 유통시장 정책을 '원흉'으로 꼽는다. 

특히 정부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초저가로 정유사 및 수입석유 대리점으로부터 석유제품을 대량 구매하고 알뜰주유소를 통해 이를 초저가로 판매해 정유사 주유소에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게 정유업계의 불만이다.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정책에 대해서도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외국산 석유제품에 법인세 감면, 석유수입부과금 환급 등의 혜택을 줘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꼴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당국은 정책 실패를 부인했다. 그간 석유유통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유가의 안정, 소비자 편익 증대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근 정유업계 적자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이용환 석유산업과장은 "위기의 원인을 정책에서 찾으면 안 된다"며 "경쟁 활성화로 생긴 과실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체제를 구축했는데 이제 와서 상황이 어려우니 과거의 과점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글로벌 석유시장의 환경변화에서 비롯된 정유사의 위기의 원인을 국내 시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제마진의 축소는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부분"이라며 정유4사 가운데 현대오일뱅크가 정제시설 고도화 비율을 높이는 등 선제적 대처로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지적에 따라 알뜰주유소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할 뜻을 내비쳤다. 알뜰주유소에 시설개선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 과장은 "정유사들이 손실원가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적자의 원인이 국내 영업인지도 불명확하다"며 "수출 시장에서 어렵다고 국내 시장에서 이를 벌충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유업계의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계속 지켜보고 있다"며 "정유업체도 먼저 국내 유통조직이 효율적인지, 마케팅 영업이 방만하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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