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무성영화+라이브연주' 결합에 런던 관객들 뜨거운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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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무성영화+라이브연주' 결합에 런던 관객들 뜨거운 호응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9.02.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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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영목 기자] 런던 템스강변과 워털루 기차역 사이에 자리 잡은 'BFI 사우스뱅크'는 영국영화협회(BFI)가 직접 운영하는 영화관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영국 국립영화극장(NFT·National Film Theatre)을 리모델링한 이곳에서는 매년 11월께 '런던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오후 6시. BFI 사우스뱅크에는 '특별한 영화' 관람을 위한 런던 시민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평소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세계 각국의 독립영화, 고전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이곳에서 이날 '초기 한국 영화 특별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첫 상영작은 현존하는 한국영화 복원작 중 가장 오래된 영화인 '청춘의 십자로'.

안종화 감독이 1934년 제작한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에서의 젊은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2007년 한국영상자료원이 국내에서 발굴해 디지털로 복원한 작품이다.

무성영화인 '청춘의 십자로'는 '가족의 탄생'과 '만추'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김태용 감독의 손을 거쳐 변사 해설과 밴드 연주, 배우의 노래 등이 결합한 한 편의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실제 영화 상영은 키보드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로 이뤄진 밴드의 연주와 함께 영화 속 남녀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노래로 시작됐다.

'청춘의 십자로' 음악은 뮤지컬 및 연극 음악 감독인 박천휘 씨가 담당했다.

당시 유행을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 음악에 맞춘 배우들의 구슬픈 노래는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했다.

곧이어 변사 역할을 맡은 배우 조희봉씨가 등장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 등에 얼굴을 비친 중견배우 조희봉씨는 김태용 감독의 부탁으로 '청춘의 십자로' 복원 당시부터 공연에서 변사를 맡았다.

화면 속에서 영화가 상영되자 조 씨는 젊은 남녀는 물론 노인과 어린 소녀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다양한 등장인물의 대사와 심경을 목소리를 바꿔가며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영국 관객들은 비록 자막으로 내용을 이해했지만 때로는 익살스러운 조 씨의 변사 해설에 웃음을 터뜨렸고, 슬픔이나 분노 등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목소리와 화면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 복원 및 공연을 진두지휘한 김태용 감독은 변사의 역할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무성영화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국이나 미국의 무성영화는 자막을 통해 내용을 전달했다면 한국과 일본, 중국, 멀리는 이란까지 아시아 영화는 변사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 사진='초기한국영화 특별전' 포스터.(주영 한국문화원 제공)

동료를 통해 '청춘의 십자로'를 처음 본 김 감독은 대본 및 음악 작업에다 변사를 추가해 당시 영화를 오늘날의 영화로 재해석했다.

김 감독은 "처음 '청춘의 십자로' 화면을 돌려봤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를 알 수 없었다. 수백번을 보면서 스토리를 생각했다"면서 "내 영화의 각본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석한 '청춘의 십자로' 영화 내용이 맞는 것인지, 감독의 의중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관객이 시대 상황에 맞춰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도 계속해서 대사를 수정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그는 "내가 만든 영화보다 관객들이 '청춘의 십자로'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조 씨는 '가족의 탄생'에 출연하는 등 김 감독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김 감독이 변사 역할을 요청했을 때 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변사를 맡아 배우들의 목소리를 직접 연기하다 보니 조 씨는 그때그때 대본 수정을 건의해 김 감독과 상의한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영화다 보니 현재의 여성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나 대사 등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식이다.

일반 영화나 드라마 연기에 비해 훨씬 힘이 들지만, 변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영화 덕분에 영국과 스페인 등 다양한 해외 관객들을 만나는 경험도 했다.

조 씨는 "(변사 역할을 맡은) 처음에는 영화 그 자체나 음악에 빚진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관객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다른 영화와 달리 이날 '청춘의 십자로'의 상영이 끝났을 때는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커튼콜' 시간이 마련됐다.

밴드와 배우들은 물론 1시간여를 쉬지 않고 '연기'한 조 씨에게 관객들은 큰 환호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주영한국문화원이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BFI,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개최한 이번 특별전은 오는 28일까지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11편을 영국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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