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풀린 이란시장…건설사들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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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풀린 이란시장…건설사들 잰걸음
  • 정상진 기자
  • 승인 2016.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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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조∼220조원 규모 전망…플랜트·SOC 발주 줄이을 듯

[코리아포스트 정상진 기자] 이란 시장이 해외건설 수주 확대에 기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완벽한 카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 중동 수주 담당자의 말이다.

과거 중동 건설 5위 시장으로 군림했던 이란 건설시장의 빗장이 풀렸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로 그동안 묶여있던 대규모 사회기반 시설과 플랜트 공사 등이 발주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란이 최근 침체된 중동 건설시장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저유가 추세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이란의 재정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는 경계감도 적지 않다.

◇ '손에 잡히는' 이란 건설시장…제2의 중동붐 잇나

이란은 가스·석유자원 부국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가스 및 정유 플랜트 발주가 활발했으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이후 발주가 중단됐다.

우리나라가 2010년 대(對)이란 경제제재에 동참하기 전까지 이란은 해외건설 수주액으로 전체 국가 중 6위, 중동 국가 중에는 5위를 차지하는 중점 국가였다.

1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은 사우스파 가스전 공사를 비롯해 이란에서만 97건, 총 120만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했다.

대림산업이 1975년 5월 국내 건설사 처음으로 이란에 진출해 정유·화력발전소 등의 공사를 수행했고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큰 16억2천33만 달러 규모의 사우스파 4∼5단계를 수행했다.

두 회사에 비해 후발주자인 GS건설은 2002년 9억3천600만 달러 규모의 사우스파 9∼10 프로젝트 등 3건의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시작된 이후 이란은 해외건설 수주에서 전체 국가 가운데 17위, 중동 국가 중 8위로 떨어졌다.

2009년 GS건설은 사우스파 가스개발사업 6∼8단계 탈황 및 유황 회수설비 공사(13억9천만 달러)를 수주했으나 경제제재에 들어가면서 공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이번에 경제제재가 풀리면 우선 국가 정비에 필요한 도로·철도·항만·댐·병원 등 토목·건축부문의 인프라 시설 공사와 주택 건설 공사가 대거 발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란은 가스매장량이 세계 2위, 원유매장량이 4위인 국가지만 오랜 제재로 기반시설이 상당히 낙후했다.

이란의 외화 벌이를 위한 가스·정유 플랜트 시설 교체 공사도 쏟아질 전망이다.

현재 이란 건설 시장의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긴 어렵다.

국토교통부는 수출입은행 등의 자료를 토대로 이란 건설시장 규모를 작년 말 기준 461억 달러(약 55조8천억원)로 추정하고 올해는 496억달러(약 60조656억원)로 7.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 도로도시개발부는 작년 10월 '이란 교통·도시개발 서밋'을 열고 250억달러 상당의 도로·철도·항만 프로젝트를 설명한데 이어 11월에는 '테헤란 석유정상회의(테헤란 서밋)'에서 1천850억달러 상당의 에너지 프로젝트를 소개한 바 있다.

작년 12월에는 '제12차 이란 석유화학포럼'에서는 700억 달러 상당의 투자유치 사업도 공개했다.

이를 종합하면 앞으로 석유화학 플랜트와 SOC 등 사회기반시설 부문에서 약 1천억 달러(약 121조원) 안팎, 많게는 1천850억 달러(약 224조원)의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는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에너지부분의 투자 확대가 우선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우리 건설사는 공사 수행능력이 뛰어나 이란에서 평판이 좋고 기술력도 높아 수주 경쟁력이 있다"며 "국내 건설사들이 이란 시장 공략에 성공한다면 중동을 비롯해 침체된 해외건설 시장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건설이 수행한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4, 5단계 전경

◇ 국내 건설사 "이란 시장 잡아라"…정부도 지원 채비

현재 국내 건설사는 빗장풀리는 이란 시장을 잡기 위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이란 시장을 선점한 대림산업·현대건설·GS건설 등은 경제제재 해제에도 철수하지 않고 운영해온 테헤란 지사 등을 활용해 수주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현재 테헤란 지사에 5명의 직원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며 발주처 동향 등을 살피고 있다.

대림산업은 국내 건설사 가운데 이란에서 가장 많은 공사를 수행한 데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때 남부 캉간 가스정제소 공사를 중단하지 않고 진행한 인연으로 이란 정부와 발주처로부터 가장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경제제재 이후에도 이란 정부·발주처와 네트워크를 유지해 온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면 강점이 될 것"이라며 "우선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공사와 가스·석유화학 플랜트 개보수 공사를 중심으로 수주 전략을 짜는 중이며 이르면 연내 좋은 소식(수주)이 들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2000년 이후 테헤란 지사에 직원없이 사무실만 운영해오다 지난해 12월부터 지사장 포함 국내 직원 2명과 현지인 직원 1명을 현지에 두고 본격적인 정보 탐색에 나섰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본사에도 글로벌마케팅본부내 CIS팀에 이란 담당자를 두고 발주 동향을 면밀히 체크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인프라나 정유 플랜트 등이 수주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S건설은 2014년 초부터 영업 담당 직원을 테헤란 지사로 보낸데 이어 작년 핵협상 타결 이후 분위기가 개선되면서 테헤란 지사장도 급파했다. 최근엔 항만·병원·도로 등 인프라 시설 수주를 위해 전문 영업인력도 배치해 본격적인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 선도업체 외에 대우건설, 삼성물산, SK건설 등도 인근 두바이 지사 등을 통해 이란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라크에서 대규모 주택사업을 진행중인 한화건설도 이란 시장에 새로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상반기 내에 2008년 말 폐쇄했던 이란 지사를 다시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경제제재 기간 동안 중단됐던 가스·정유 플랜트 분야의 발주가 다수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가격과 시공 경쟁력을 확보하고 능력있는 현지 건설업체와 중장기적인 협력관계도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란 진출 건설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책도 곧 마련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8월에도 국토부 장관을 대표로 이란에 시장개척단을 파견한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란 진출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안이 조만간 마련되면 인프라·플랜트 위주 시장개척단을 다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개별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계속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 1994년~2001년까지 대림산업이 건설한 이란 카룬댐 전경. 우리나라 최대 댐인 소양강댐의 10배 크기에 달하는 전력용량 200만KW를 생산할 수 있다

◇ 저유가·이란 경제 불확실성 등은 여전히 걸림돌

그러나 이란 시장이 열렸다고 해서 곧바로 수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손봐야 할 현안 사업은 널려 있는데 오랜 경제제재로 인해 '곳간'에 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란은 앞으로 원유·가스 등을 판매해 국가 재정을 충당할 것으로 보이지만 유가가 곤두박질친데다 공급과잉 문제는 당분간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김종국 중동실장은 "이란 시장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 등은 인정하지만 국가 재정이 어렵고 외국기업의 투자도 제도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불확실성이 적지 않다"며 "경제제재가 풀렸다고 수조원대 시장이 바로 열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이란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 우리 건설사가 공사를 따내기 위해서는 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을 통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조달해 공사에 참여하거나 과거처럼 외국계 거대 에너지 기업 등이 추진하는 사업의 공사를 수주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이 이란 가스전 개발에 참여하고 건설사가 자금을 빌려 가스전(LNG) 시설 플랜트 공사를 수행하는 투자형 사업 등도 대안으로 꼽힌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유럽 등 자본력이 있는 국가의 기업과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하거나 정책적으로 이란의 석유·가스 등 자원 개발 지분과 시공권을 맞바꾸는 '패지지 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항만 등 SOC 사업은 국내 건설사가 공사를 해주고 일정 기간 운영 수입을 얻은 뒤 이란 정부에 넘겨주는 BOT(Build-Own·Operate-Transfer)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원금 손실에 대한 이런 정부의 지급보증 등 관련 제도가 미비한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달러화 결제가 불가능한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국·유럽 기업들이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어 이들 업체들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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