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日 핵무장 용인' 시사…임박한 핵안보정상회의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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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韓日 핵무장 용인' 시사…임박한 핵안보정상회의에 찬물
  • 피터조 기자
  • 승인 2016.03.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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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피터조 기자]미국 공화당의 대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오는 31일(현지시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다뤄질 가장 예민한 주제의 '뇌관'을 건드린 모양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미국의 동북아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어떤 시점이 되면 논의해야만 하는 문제"라며 "우리는 더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 없으며 지금은 핵의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핵무기를) 갖는 것은 미국에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잖아도 두 나라의 핵무장 가능성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워싱턴 외교가들과 핵 비확산론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미국 외교전문지인 '디플로매트'는 28일 "트럼프의 아이디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비확산 노력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며 "특히 한국과 일본 내에서 트럼프의 선거 유세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관측통들에게 근심스러운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의 핵도미노 경쟁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점에서 공화당 유력주자인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논의가 시작도 되기 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북아, 특히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은 허황된 이론으로 치부되지만, 최근 몇 년 새 미국 내에서는 비확산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있는 상태다. 북한 핵문제가 오랫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 국가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이 적지 않다.

워싱턴의 우려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바로 지난해 나온 '퍼거슨 보고서'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지난해 4월 발간한 한국의 핵무장 시나리오 보고서에서 "한국은 이미 일반 원자로에서 수백 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한데다가 핵탄두 설계 기술과 첨단 운반체계 능력까지 구축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 수십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NPEC)의 헨리 소콜스키 대표는 2014년 하원 외교위원회 공청회에 나와 "일본 정부가 아오모리(靑森)현에 건설 중인 롯카쇼무라(六ヶ所村) 핵재처리 공장이 정식 가동되면 매년 2천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이는 아마도 한국이 핵무기 옵션으로 농축이나 재처리에 나서도록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소수론이고 '실현 가능성' 보다는 '경계'의 의미가 강하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놓여있는데다가,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적인 정책적 목표로 내세우는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서는 시나리오는 명분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그동안 금기시돼온 동맹국들의 핵무장을 허용함으로써 국제 비확산체제에 정면 도전하겠다는 뜻이어서 워싱턴 조야에서는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더욱이 공화당 유력 주자인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코앞으로 다가온 핵안보정상회의에 부정적 여파를 드리울 가능성이 크다.

제4차인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 외교 이니셔티브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 가운데 하나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핵 재처리 문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룰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추출해온 플루토늄을 재처리해 민수용 원자로의 원료로 활용하느냐, 아니면 핵무기 제조로 전용하느냐는 사실상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해 엄격한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 핵보유국인 중국과 일본은 이미 핵재처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은 당장의 재처리 능력은 없지, 앞으로 한·미 간 공동연구 결과에 따라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 국제 비확산 체제를 주도하는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핵 재처리 능력이 자칫 '오용'될 경우 핵도미노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토머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보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의제를 설명하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강국들이 경쟁적으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하고 있다"며 "특히 경제적 정당성이 거의 없다"고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의 발언은 현재 미국 정부의 기존 정책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트럼프의 발언에 불쾌감이 자못 클 것으로 보인다. 핵안보정상회의를 가장 큰 외교적 치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트럼프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자신의 이니셔티브가 사장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 긴장하는 쪽은 중국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비우호적 관계에 놓인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중국에 '저주'가 될 것이라는 게 디플로매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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