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떨어지는 산업현장…임금은 최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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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떨어지는 산업현장…임금은 최고 수준
  • 김광수 기자
  • 승인 2016.07.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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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광수 기자] 기아차[000270] 미국 조지아 공장의 근로자 1인당 자동차 생산 대수는 연간 123.1대다. 42.5대인 국내 공장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근로자 평균 연봉은 5천757만원으로 한국(8천245만원)의 70% 수준이다.

현대차[005380] 체코 공장의 1인당 생산 대수도 한국의 두 배에 이르지만, 1인당 연봉은 2천만원 초반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각지에 보유한 공장의 생산성을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낮다.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hours per vehicle)을 보면, 지난해 기아차의 국내 공장은 25.9시간으로 미국(15.8), 슬로바키아(15.0), 중국(19.4) 등에 비해 훨씬 많이 걸렸다.

현대차도 2014년 6월 말 기준 국내 공장의 HPV는 26.8시간으로 미국(14.7), 중국(17.7), 체코(15.3), 인도(20.7), 터키(25.0) 등 해외공장과 차이가 났다.

자동차 업계의 주요 생산성 지표인 '편성효율(생산라인에 적정인원이 배치됐는지 나타내는 지표)'도 우리나라가 떨어진다.

기아차 국내공장의 편성효율은 60% 수준으로 미국(93%), 슬로바키아(93%), 중국(92.2%)보다 3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국내 공장은 60명이면 돌아갈 라인에 100명이 배치돼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 사례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지목된 제조업의 저생산성 심화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이 어느새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굳어져가는 것이다.

임금 상승 속도는 빠른데 생산성이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비단 자동차 업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산업 전반에 '고임금-저생산성'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화학, 철강, 전기전자, 조선 등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주력 업종들의 경쟁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제조업 노동생산성 4년째 하락…성장성·수익성↓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온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은 각종 지표로도 확인된다.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제조업의 물적 노동생산성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지난해까지 4년째 하락했다. 그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진다는 것은 투입 노동량 대비 산출량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특히 노동생산성 하락 폭이 해마다 커지는 점이 심상치 않다. 노동생산성의 둔화는 기업의 해외 이탈을 촉진하고 국내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등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다.

여기에 비싼 인건비, 높은 매출 원가율 등이 더해지면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한·일 업종별 주요 기업의 1인당 평균 연급여액(2013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을 제외하고 자동차, 철강, 전자 업종에서 한국 기업이 일본의 동종업계 기업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업계의 대표격인 현대차는 9천400만원으로 일본 도요타(8천320만원)보다 1.13배 평균 연급여액이 많았고, 철강업종은 포스코[005490]가 7천900만원으로 일본 신일본제철(5천963만원)보다 1.32배 많았다.

전자 업종에서도 삼성전자[005930]가 1억200만원으로 소니(9천268만원)보다 1.1배 많았다.

매출원가 구조도 글로벌 업종 경쟁에서 우리를 뒤처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올해 초 한국경제연구원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4개 국가별 주력 업종(화학, 철강, 전기전자, 자동차, 조선)의 매출 원가구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매출 원가율은 OECD 회원국, 선진국보다 대체로 높고 신흥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철강과 전기전자 업종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매출원가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은 우리를 거세게 추격해오고 있다.

유엔 국제제조업경쟁력지수를 보면 2000년에는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 순위는 11계단 차이를 보였으나 2010년에는 불과 3계단 차이로 좁혀졌다. 지금은 일부 주력산업에서 중국이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결국 노동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키는 것이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생산현장 근로방식 바꾸고 업무집중도 높여야"

임금 수준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일선 현장의 근로방식이나 업무집중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 현실이 우리의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이유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늘어지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등 근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163시간으로 OECD 평균인 1천770시간보다 393시간 길어 멕시코, 그리스와 함께 장시간 노동 국가로 분류되고 있기도 하다.

경제계에서는 급여 체계가 후진적인 근로 관행을 부추기는 만큼 연공급 체계를 성과유인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의 할증 수당이 각각 50%로 ILO 권고 수준이나 일본의 경우보다 높아 생산성과 무관하게 장시간 근로만 유도되는 효과를 낳고 있어 이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개별 업체들이 현장에서 품질과 생산성, 원가 등 주요 요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제조업의 돌파구를 '강한 현장 만들기'에서 찾아 성과를 거두는 사례도 있다.

최근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직원 150여명, 연매출 300억원 규모의 굴착기·감속기 생산업체 '선진정공'은 제품 1천개 생산에 50개 정도이던 불량품을 최근 5개로 줄였다. 작년 말에 제품 하나를 생산할 때 105분 걸리던 것이 지금은 74분으로 단축됐다.

이같은 변화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 부품 협력업체들의 모범 사례를 따라하며 현장을 바꿔나가면서 비롯됐다.

올해 1월 선진정공은 연간 목표를 '불량절감률 50%, 생산성 20% 향상'으로 설정한 뒤 공장 곳곳에 생산 진도 현황, 일일 생산 실적, 불량률 저감 그래프 등을 부착해 매일 상황을 점검했다. 매주 한 차례 관리자급이 모여 회의를 하면서 현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공유하고 이를 곧바로 현장에 반영했다.

이 회사의 박성수 회장은 "한국의 많은 기업이 품질·생산성 향상을 이야기하면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 사례는 돈 안 들이고 한 일"이라며 "한국 제조업이 일본의 20~30년 전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우리 기업들이 투자 없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작은 노력부터 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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