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여행]출렁다리 넘어 섬으로, 강진 '가우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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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여행]출렁다리 넘어 섬으로, 강진 '가우도'를 가다
  • 김정숙 기자
  • 승인 2017.03.10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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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김정숙 기자]산 넘어 남쪽, 봄기운을 가득 품은 섬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2.5km 남짓한 산책로가 펼쳐져 있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뇌리에 담긴다. 마을 식당에서는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요리하는 손길이 바쁘다. 섬으로는 보기 드물게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까지 모두 갖췄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곳, 가우도 얘기다. 

강진은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다. 해남과 장흥을 양쪽에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지만 유명하다 할 만한 것은 쌀, 딸기, 파프리카 등 바다와 별 상관없는 것들이다. 첫 손에 꼽는 음식도 해산물이 아닌 한정식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나 왕족들이 강진에 유배 갈 때 따라간 수라간 궁녀들이 이곳에 궁중요리를 전파했다는 설이 있다. 군의 형상도 그렇다. 남쪽의 강진만이 군의 핵심부까지 깊게 들어와 대구면과 도암면을 갈라놓았다. 지도로 보면 그 모습이 바지나 말굽을 연상케 한다. 

가우도에 들어서면 각종 표지판이 관광객을 반긴다. 
최근에는 가우도라는 작은 섬이 강진의 특별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섬의 위치는 예컨대 강진이 바지라면 무릎 사이 즈음이다. 소머리와 생김새가 흡사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구수 14호, 인구수 33명의 작은 섬이지만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4~5년 전 섬 양쪽에 출렁다리가 놓인 뒤로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의 핵심 관광자원으로 급부상해 해마다 수십만 명의 발길을 붙잡는 중이다. 지난해만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대나무 길 
출렁다리라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면 위험할까봐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튼튼한 나무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를 도보로 횡단하는 일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지역이라지만 군데군데 걸린 구명튜브와 스릴을 노리고 만들어 놓은 유리바닥 구간을 보면 더 그렇다. 출렁이는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출렁다리인지도 모른다. 이 다리는 대구면 쪽으로 연결된 저두 출렁다리(438m, 도보 10분 소요)와 도암면 쪽으로 연결된 망호 출렁다리(716m, 도보 15분 소요)로 나뉜다. 이렇게 걸어서 입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우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자동차는 드나들 수 없지만 섬 주민들이 외부에서 생필품 등을 사 나르기 위해 이용하는 사륜 전동 카트는 통행이 허락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바닷길, 함께해(海)길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은 저두 출렁다리로 입도한다고 가정했을 때, 왼쪽으로 나무 데크길이 보인다. 이 데크길은 가우도의 서쪽 해변을 따라 0.77km 가량 이어져 있다. 해변의 생김새에 따라 들쭉날쭉 깔린 길이지만 남해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데크에 설치된 조명은 일몰 후 어둠에 잠기는 섬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 

데크길이 끝나는 곳엔 망호 출렁다리가 있다. 출발지였던 저두 출렁다리가 트레킹 코스의 일부처럼 단조로웠다면 망호 출렁다리 인근에는 마을식당이나 낚시터, 매점, 펜션 등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른 봄을 즐기러 온 향춘객들은 이곳에서 가져온 물이라도 나누어 마시며 다음 코스를 생각한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해변길을 따라 1.66km를 길게 도느냐, 마을이 있는 샛길로 빠져 섬 중앙부로 들어가느냐다. 다만 해변길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나무 데크길이 아닌 콘크리트 도로와 흙길로 이루어져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우리네 고향과 닮아 있는 가우도 마을 
선택하기 나름이겠지만 지금까지 해변을 따라 걸어왔으니 마을로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14호 뿐인 작은 마을이라 방심하는 순간 지나쳐버릴 수 있다. 새마을 깃발을 휘날리는 빨간 벽돌집이 마을회관인데, 이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과거에는 분교까지 들어선 북적이는 마을이었단다. 이렇게 마을을 통과해 저두 출렁다리로 가는 길은 해변길로 돌아가는 길보다 약 700m 짧다. 만약 샛길로 빠지지 않고 해변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돈다면 1시간~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코스의 이름이 바로 함께해(海)길이다. 

강진만을 가로지르는 짜릿한 활강

청자타워 짚트랙 섬을 한 바퀴 휘감는 생태탐방로 함께해길이 어르신들의 인기 코스라면 젊은이들은 청자타워 짚트랙을 찾는다. 청자타워는 가우도 산 정상에 위치한 청자모양 타워다. 함께해길과 연결된 등산로를 통해 10~15분 내외로 찾아갈 수 있다. 

이곳의 짚트랙은 약 1km 길이로 해상체험시설로는 전국에서 가장 길다. 라인이 3개라 연인, 가족 단위 손님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타워 1층에서 안전장비를 갖춘 뒤 6층 정상에 올라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직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청자타워 높이만 해도 25m에 이른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발밑에 펼쳐진 까마득한 풍경 속으로 어떻게 뛰어들어야 할지 막막하지만 몸은 이미 와이어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안전펜스가 젖혀진 후 발판이 천천히 내려앉는 구조라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체험자들이 동시에 활강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활강 시간은 1분 남짓. 손발이 저릿했던 공포는 어느새 성취감으로 바뀌어 마음을 흥분하게 만든다. 짜릿한 활강이 끝나면 저두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아예 섬 밖으로 나간 셈이 되므로 가우도에 더 이상 볼일이 남지 않은 때에 색다른 탈출(?) 방법으로 이용하면 좋다. 

섬 밥상, 그냥 지나치면 섭하지라~ 
자고로 여행의 꽃은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는 일일 터. 가우도에 왔으니 가우도의 맛을 제대로 보고 가야 한다. 섬에 하나뿐인 가우도 마을식당에 들리면 강진만에서 잡은 싱싱한 제철 어패류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가우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마을 창고를 리모델링해 작년 5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2층 규모이며 꽤 널찍하고 쾌적하다.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조망도 훌륭하다.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망호 출렁다리를 보는 것은 도무지 지겹지가 않다. 

메뉴는 회정식, 회덮밥, 매운탕, 황가오리, 낙지볶음, 주꾸미 볶음, 해물라면 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가우도 특산이라 할 만한 황가오리 요리는 제철인 한여름에나 먹을 수 있으니 미리 인지해야 허탕을 치지 않는다. 황가오리를 제외한 다른 메뉴는 어디서나 사먹을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지만 주민들이 직접 잡은, 혹은 강진의 해산물만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고민 끝에 주문한 음식은 매운탕과 회덮밥. 매운탕의 재료는 우럭이고 회덮밥의 회는 살이 가장 맛있다는 2~3kg 광어다. 회덮밥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바지락 국이 따라 나온다. 과거에는 강진만에서 잡히는 바지락이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했다는 자부심 가득한 설명도 함께다. 

우럭매운탕과 조개탕 모두 살이 푸짐하다. 남도 음식이라 자극적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우럭 살이 넉넉하게 풀린 매운탕 국물을 맛보면 누구라도 깜짝 놀라고 만다. 양념과 재료가 조화롭게 어울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회덮밥 역시 초장이 아닌 밥 위에 수북이 쌓인 광어회가 주인공이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거나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닌, 가우도의 평범한 주민이 집밥을 짓듯 요리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마을식당 입구에 놓인 굴 껍데기 한 망 
음식 맛보다 더 훌륭한 것은 운영진의 인심이다. 이들은 아직 시설이 부족한 가우도에서 안내데스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먼 길 달려온 손님에게 먹던 딸기를 나눠주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매운탕과 회덮밥을 시킬 때 해물라면에 들어가는 생굴을 맛보라며 내어주던 손길도 잊히지 않는다. 외지인을 향한 이토록 따뜻한 정이 가우도를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취재 3일째. 서울로 돌아오던 날 이곳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생굴 2kg을 포장해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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