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찾아간 구러시아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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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찾아간 구러시아 공사관
  • 김성민기자
  • 승인 2017.05.02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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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

요사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 관계, 한반도의 ‘일촉즉발’의 초위기 상황 등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정작 우리는 안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반면 외국에서는 한국의 현 상황을 전쟁발발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음은 얼마전 한국을 다녀간 일본친구들을 만나고 느낀 소감을 쓴 재한 일본인 작가 이며, 현재 한양여대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는 히라이 토시하루(平井敏晴)씨의 글을 소개한다.--편집부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요즘 한국은 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질까 걱정이 된다. 특히 그 사람이 일본인의 경우에는 북한의 위협이 더 심해지면 가까운 미래에 그 걱정이 현실이 될 것도 같다. 사실은 내가 가르치는 학과에서도 한 일본인 유학생이 몇 주 예정으로 귀국했다. 나도 일본에 계시는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상황이 심해지기 전에 “빨리 돌아와!”라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 필자 히라이 토시하루(平井敏晴)씨

이런 와중에 일본에서 친구들 3명이 한국으로 여행을 왔었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들은 법대를 졸업한 문과 엘리트일 뿐만 아니라 모두 대기업에 입사해서 지금은 각 업계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러운 친구들이다.

한국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판문점 방문이었다. 투어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소감을 물어봤더니 일본 아줌마 이야기가 바로 나왔다. 투어 참가자는 병역중인 멋있는 한국남자와 이야기할 시간도 갖는데 “그때 일본 아줌마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그 남자에게 말을 건 것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하면서 피곤한 얼굴을 보여줬다.

세 명중 두 명은 한국이 처음이었고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왔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사회의 항의와 저항, 또한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는 과정과 탄핵 후에 아직도 보이는 한국정치의 불안정감이 바로 그 원인이다. 우리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도 찾아갔다.

그런데 친구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 것은 의외로 다른 내용이었다.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날 동행한 나의 제자가 한 말이다. 친구들이 나의 제자에게 만약에 북한군이 군사경계선을 넘어서 한국으로 진입하면 어떻게 할 건지를 주뼛주뼛 물어봤다. 아마 “너무 겁이 난다”와 같은 답이 나오겠다고 예측을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 죽어버리죠”란 대답이 나왔다.

▲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에서 우리 측 헌병이 앞에 보이는 북한의 판문각을 향해 경비근무를 하고 있다.

제자가 먼저 귀가한 후 우리끼리 이야기에서 친구들은 젊은 사람마저 그런 대답을 당당히 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한테 항상 위협을 받고 있는데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은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위험하다고 예측되는 지역이 여기저기 있는데 이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진 않는다. 이러한 마음은 내 제자가 북한군 침입에 대해서 가지는 것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지진은 자연 재해지만 북한의 공격은 전쟁이다. 이 부분의 차이를 고려하면 북한군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다 죽어버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기 운명을 받아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두 번째로 친구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한 것은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해 있는 구러시아공사관이다. 아시다시피 1896년 2월 11일에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고종이 신변의 위험을 피하기를 위해 경복궁을 떠나서 거기서 1년 동안 머물렀다. 바로 옆에 위치한 덕수궁과 달리 관광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잡한 메트로폴리스 서울 안에 숨어 있는 명소다. 우리가 찾아갔었을 때도 역시나 산책중인 한국인 몇 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고종의 이야기도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 필자 히라이 토시하루씨가 일본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다

낮은 언덕에는 네오르네상스양식의 길쭉한 백악 건물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 건물은 산뜻한 모양과 달리 조선시대말의 복잡한 동아시아 관계를 조용히 전해주는 마력을 가진다.

역사는 즐겁다. 역사적 사실들을 먼저 배우고, 또한 그 사실들이 흘러가는 흐름을 찾는 어드벤처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러시아공사관을 바라볼 때 항상 그 흐름을 느낀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직 역사라는 이야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과연, 북한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아관파천에서 흐르는 역사의 강물 위에 떠돌고 있었다.

그 언덕이 친구들에게 굉장히 흥미로웠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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