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왜 지주사 접었나…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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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왜 지주사 접었나…배경은?
  • 이미경 기자
  • 승인 2018.03.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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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이미경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당초 예상과 달리 '지주사 체제 전환'이 아닌 오너 일가의 현대모비스 직접 지분 매입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업계에서는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지주사 체제가 아닌 '지배기업' 현대모비스를 중심에 둔 개편에 자동차 부문의 경쟁력, 향후 인수·합병(M&A)의 수월성, 사회적 기대 부응 등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9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을 통해 현대모비스의 핵심사업만 추리고, 이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현재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16.9%, 0.7%, 5.7%씩 보유하고 있다.

매입 과정이 끝나면 이들 부자(父子)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약 30% 수준이 될 전망인데, 이 가운데 정 회장이 정 부회장보다 월등히 많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이 개편안이 공개되기 전까지 증권업계 등에서는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3사를 투자·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 부문을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드는 '전형적' 지주사 체제 개편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예상과 달리 모듈·AS부품을 분리한 현대모비스를 그룹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출자구조 재편 안을 선택했다.

자동차·증권 업계에서는 우선 현대차그룹 핵심사업인 완성차 경쟁력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주사 개편을 위해 현대차와 기아차를 각각 투자·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하면 두 회사의 미래 사업 확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투자 부문을 따로 분리해 '반쪽'으로 운영하는 곳은 없고, 반대로 앞다퉈 직접 유망 업체 인수에 뛰어들어 혁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풍부한 자금 유동성과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확보한 현대·기아차가 투자·사업 부문 분리를 통해 스스로 발목을 잡는 방법을 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주회사 체제가 향후 꼭 필요한 대규모 M&A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면, 지주회사 체제 내 자회사 등이 공동 투자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1개 계열사가 모두 인수 부담을 떠안는 구조인데, 탐나는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인수 가능성 자체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11년 현대건설 인수 당시 현대차 21.0%, 기아차 5.2%, 현대모비스 8.7% 등 3개 계열 회사가 함께 현대건설 지분을 인수한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배구조 개편 이후 현대모비스는 그룹 내 '미래기술 리더'(주도자) 지위를 확보하고 과감한 투자·인수를 잇달아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 사진=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연합뉴스 제공)

'사회적 공감을 얻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얘기도 그룹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대주주의 현물출자와 자사주 활용, 과도한 브랜드 사용료 수입 관련 논란 가능성을 사전에 막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이 모비스 지분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비스 등 다른 계열사 지분을 팔 경우, 이들이 납부할 양도소득세만 약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간단히 말해 법적으로 낼 것은 다 내고,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오너 일가가 출자구조 조정 일환으로 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면, 끊임없이 제기된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기대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분할 후 현대모비스의 외양을 더 키워 수년 내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현대차그룹의 출자 구조상 이 시나리오의 현실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식 소유를 통해 회사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는 일반적 '지배회사'와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총자산이 5천억원을 넘고, 보유한 자회사 총 주식가액 합이 자산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현대자동차 주식 20.8% 등을 갖고 있는데, 분할 후 남는(존속) 현대모비스의 총 자산(18조8천억원)과 비교해 현대차 등에 대한 총 지분가액은 4조1천억원으로 비율이 50%에 턱없이 모자라는 22%에 그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이번 재편안은 사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라며 "대주주가 지분거래를 통해 거액의 세금을 모두 지불하며 편법을 배제한 방식은 주주들에게 주주 친화 경영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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