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경제] 영향력 커진 행동주의 펀드…기업합병 뒤엎고 CEO 연봉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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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경제] 영향력 커진 행동주의 펀드…기업합병 뒤엎고 CEO 연봉 삭감
  • 김형대 기자
  • 승인 2018.05.22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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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형대 기자] 일정 수준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세계 행동주의 투자펀드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주요 계획을 변경·무산시키거나 고액 연봉으로 비판받는 최고경영자(CEO) 보수를 삭감하는 등 기업 경영에서 실제 변화를 일으킨 사례도 상당수다.

미국 주요 기업들을 겨냥했던 이런 투자자들은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려 '사냥'에 나서고 있다.

◇ 기업 합병계획 변경·무산…CEO 연봉 삭감하기도

이런 펀드들은 의결권을 일정 부분 확보해 주주총회 의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아예 이사회에 직접 진입하는 방식, 시장 여론을 조성하는 방식 등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미 세워진 전략이나 계획을 바꾸도록 압박을 가한다.

22일 JP모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들을 겨냥해 벌인 이런 조직적인 활동은 총 662건으로 집계돼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의 요구가 관철되는지는 사안마다 다르지만, 큰 변화도 상당수 일어났다.

일본 후지필름은 미국 제록스 인수 결정을 내렸으나 제록스 대주주인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이 "회사 가치를 저평가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자 결국 이달 중순 합병이 무산됐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 조정하기로 한 배경에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을 시작으로 한 적극적인 반대 운동이 있었다. 그룹 계열사 지분을 일부 확보한 엘리엇의 반대 선언에 이어 의결권 자문사인 ISS·글래스 루이스의 반대 권고가 잇따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21일 "주주와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고 말해 시장의 반대 움직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영국 워릭대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을 받은 미국 244개 상장사의 CEO 보수 7년치를 분석했다.

이어 기업 규모와 가치가 비슷하지만,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은 다른 244개 기업을 대상으로 삼아 CEO 보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투자자 공격 전에는 비교 대상 기업들보다 평균 32만9천 달러 더 높았던 CEO 보수가 투자자 공격을 받고 난 이듬해에는 총 35만 달러 가량 깎여 비교 대상 기업보다 낮아졌다.

연구팀의 스와티 카노리아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이사회에 진입하고 CEO를 면밀히 감시하면서 기업에 부담스럽고 액수가 많은 성과금을 줄 필요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펀드들이 기업을 겨냥해 벌이는 활동은 평균 22개월간 이어지는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 사진=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연합뉴스 제공)

◇ 아시아 겨냥 활동 6년 새 10배↑…복잡한 지배구조는 변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이런 펀드들은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용한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 662건 중 절반을 넘는 344건이 미국 밖에서 일어났으며 미국 외 활동의 31%(106건)는 아시아에서 벌어졌다.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활동은 2011년 10건에 불과했다가 6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아시아 중에서 일본 내 활동이 32%, 한국에서 벌인 활동은 6%였다.

리서치업체 액티비스트 인사이트는 지난 4년간 아시아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에 특정 요구를 해 전면적 또는 일부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 확률이 40%에 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아시아 공격이 늘어난 데 대해 데이비드 헝커 JP모건 주주행동방어 책임자는 "미국 시장의 포화가 원인 중 하나"라며 "행동가들은 이미 모든 기업을 골라 검토를 거쳤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은 보고서에서 이들이 아시아를 겨냥해 벌이는 활동의 중요한 변수로 아시아 기업들의 복잡한 지분 교차보유를 지목했다.

앞서 오너 일가 지분이 6.25%인 홍콩 동아은행(BEA·東亞銀行)이 지분 8%를 보유한 엘리엇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한 사례가 있다.

다만 복잡한 지배구조가 경영권 방어에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9∼2017년 오너 일가나 이익집단이 보유한 20여 개 기업에 대한 활동에서 3분의 2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승리로 결론 났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에는 상위 5개 그룹이 증시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할 만큼 집중적인 시장 구조가 이들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높여주고 있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해당 기업 부문이 변화에 반대할 경우 개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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