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뉴스] 美, 영변 폐기에 'WMD·ICBM 전면 동결' 병행 고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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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뉴스] 美, 영변 폐기에 'WMD·ICBM 전면 동결' 병행 고수했나
  • 김형대 기자
  • 승인 2019.03.0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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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형대 기자] 결렬로 끝난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량살상무기(WMD)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 동결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끝까지 주장했다는 '한가지 조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별도의 우라늄농축시설 폐기나 핵신고 등 여러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WMD·ICBM 프로그램의 전면동결'과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 진행 상황에 정통한 미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북한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와 관련해 설명하다 "우리가 직면했던 딜레마는 북한이 현시점에서 그들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동결(complete freeze)을 꺼린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그래서 제재 완화로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줌으로써 사실상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WMD 개발에 보조금을 주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핵무기 등 WMD 프로그램의 전면적 동결을 하지 않는 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라 제재완화를 해주더라도 그 경제적 이득이 다시 북한의 핵무기 등 WMD 개발 자금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어 비핵화가 요원해진다는 얘기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WMD 프로그램의 전면동결과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제재완화 등으로 보상할 수 없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고위 당국자는 핵·미사일 실험으로 부과된 대북제재니 실험 중단에 따라 제재가 해제돼야 한다는 북측의 논리를 거론하면서 "실험은 핵무기 개발 프로세스의 부분일 뿐이고 무기 자체가 테이블에 올라와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는 "(문제는) 무기의 실험이 아니라 핵무기의 실제적 존재"라면서 "미사일 실험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ICBM 역시 이 논의에 중심"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 WMD 및 ICBM 등 미사일 개발의 전면동결로 진입해야 한다는 게 현재 미국의 마지노선이라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북핵의 상징인 영변 핵시설 폐기도 의미 있는 조치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은 '최종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의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입구의 성격으로 WMD와 ICBM 프로그램의 전면동결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미국의 고위 당국자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21일 전화브리핑에서 모든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언급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 비핵화 개념에 대한 공유된 이해의 진전'과 '모든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 '최종적으로 로드맵을 향한 협력'이 2차 회담의 관심 사안으로 제시됐다.

▲ 사진=단독 정상회담 중 심각한 표정의 트럼프-김정은.(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과의 합의문 없이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도 귀국 직후 가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특정 지역들에 대한 비핵화만 원했지만 나는 모든 걸(everything) 원했다"면서 "진짜 프로그램을 갖지 못하면 제재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 고위 당국자가 이번 브리핑에서 ICBM을 콕 집어 언급한 데는 핵무기 운반수단인 ICBM이 미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의 해소와 가장 밀접한 사안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전화브리핑에서는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로만 포괄적으로 언급됐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다른 핵시설도 의제로 올렸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제안한 것은 영변 핵시설의 일부 폐쇄(closing down)"라고 답했다. 북한이 제재완화를 처음 꺼낸 시점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던 주의 실무협상이라고 소개하면서는 "북한이 대가로 제안했었던 것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dismantlement)"라고 말했으나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정확한 정의를 내놓는 데 애를 먹더라면서 "우리는 북한의 WMD 프로그램 전체의 해체(disassemble)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의 정의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변 핵시설만 하더라도 300개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광범위한 지역이라 향후 핵심 핵시설 추가 폐기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를 염두에 두고 제대로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의 브리핑은 기본적으로 취재진에게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데 대한 대응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생각이 달라지는 느낌", "회담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발언으로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려는 북한에 대해 미국 역시 결렬 배경을 취재진에 설명하는 식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2차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 북미가 협상 내용에 정통한 인사들의 브리핑이라는 형식으로 협상장 이외의 공간에서 '장외전'을 벌이며 후속 협상의 주도권 싸움을 시작한 셈이다.

미국은 후속 협상에서 거둬야 할 성과를 고려해 일단은 낙관적 기조를 유지하려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고 이 고위 당국자도 "말 가지고 옥신각신할 수 있지만 낙관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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