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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종필(金鍾珌) 어록(語錄)
이근엽 박사 전 연세대학교 교수  |  edt@koreap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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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9  15: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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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이근엽 전 연세대교수] 필자는 새해와 함께 구순에 들어섰으나 아직은 퍼겟펄니스(건망증)의 영향 하에 있지 않음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께 감사드린다.

지난 겨울 판문점에서 탈출하다 쓰러진 북한 군인을 포복해 가서 끌고 오던 두 국군병사는 68년 전의 필자의 모습이다.

1951년 4월 16일에 수도(보병)사단 제1연대 제1대대 제2중대 일등병 소총수였던 필자는 수류탄 두발을 허리에 차고 엠원(M1)소총을 들고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약수터의 350 미터 고지로 포복 해 올라갔다. 바위틈에서 북한군은 따발 기관총을 쏘아대고 필자 옆에 떨어졌다가 굴러 내려가면서 폭발하는 수류탄을 피하며 팔부능선 부터 일제 돌격하여 고지에 올라가니 북한군은 이미 전멸 해 있었다. 이쪽에서 퍼부은 105미리 유단포 포격으로 모두가 머리가 깨져 있었다. 더 나아가 보니 후방에는 일개 소대가량의 북한군 여성전사들이 모두 전사해 있었다. 우리 중대원들의 피해도 컸다. 16명 전사에 많은 부상자들이 후송되었다.

부대가 한계령을 지나 해발 1200미터인 가리봉 정상 능선에 올라갔다. 수없이 날아오는 적탄은 보이지 않았으나 가끔씩 쓰러지는 전우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철모 앞부분을 깊게 내려 쓰고 상황을 응시하며 진두지휘하던 육사 8기생출신 중대장 고재일 대위는 군신(軍神)이었다. 육사 8기들은 개전 초기에 졸업생의 절반인 600명가량이 전사해서 소위 “소모품”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필자의 자유연상(自由聯想)은 같은 “소모품”이었던 육사 8기 김종필(金鍾珌)대위로 이행한다, 그의 전적은 알지 못한다. 5. 16 군사 쿠데타 후에 그가 필자의 관심권(圈)에 들어왔다. 1960년대 초 필자는 서울시내의 고등학교 영어교사로서 동승동의 서울대 문리과대학 부설 어학연수원에서 영어교사 강습을 받고 있었다.

하루는 문리과대학 강당에서 정치학과 학생들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초빙하여 토론회를 열고 있었다. 학생대표가 일어서서 김 부장에게 원론적인 질문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스카르노대통령의 교도적 민주주의, 에지프트의 낫세르대통령의 .....적 민주주의,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대통령의 ....적 민주주의 등을 고려할 때 김 부장님이 품고 있다는 민족적 민주주의란 어떤 것입니까?” 김 부장이 대답했다.
“내가 품고 있는 민족적 민주주의란 우리 민족은 피가 하나라는 민족적 민주우의입니다.”
당시로서는 약간 즉흥적인 답 같이 여겨졌으나 요새 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가면서 남북의 두 지도자가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진지하게 만나고 있음을 볼 때 “피가 하나”라는 민족관을 피력했던 김종필 부장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때 질문했던 학생대표는 소위 <김형욱 회고록>을 펴냈으며 얼마 전까지 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을 했던 김경재군 이라고 알고 있다.

1970년대 그 유신시절에 박정희 정권은 경북 문경에 화랑연수원을 새워서 전국의 중.고교학생들을 불러 들여서 화랑도와 신라통일에 관한 교육을 시킨다는 정부안을 발표했다. 김종필 전총리가 한 마디 했다.
“그곳에서 교육받는 전라도, 충청도 학생들의 기분은 좋겠는가.” 이 안은 곧 폐기되었다.
1. 이 말은 그가 한 다음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나는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날을 기대 해 본다.” 이 말의 메타포(은유 隱喩)는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지역패권주의를 비난하기 위함이 었을 것이다.
2012년 초에 북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 후 김정은 위원장이 등단했을 때 남쪽과 서방세계의 지도자들과 매체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김정은 위원장을 두고 “투엔티썸띵(twinty somethinng.이십대 풋내기)” 또는 “인익스퍼리언스드(inexperienced.경험부족)” 등 염려하지 않아도 될 염려의 비난들을 쏟아냈다.

평소에 입이 무거웠던 김종필 전 총리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짧지만 무게가 있었다.
“내가 보건대 김정은, 그 사람 그렇게 간단한 사람인 것 같지 않다.”
고구려는 한(漢)의 무제(武帝)를 위압(威壓)했고 수(隋)의 양재(煬帝)를 기절시켰고 당(唐)의 태종(太宗)을 신이(胂易케. 병석에 쉬이 들어 눕게)하였다(최남선,“노력론“,<청춘> 1917). 우리는 지금 광개토지경평안호태왕엉락디제(廣開土地境平安好太王永樂大帝)(大王碑)이래 가장 강력한 민족의 령도자 김정은 국무원장을 보고 있다. 우리는 김정은 국무원장과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대통령의 6월 12일 싱가폴 정상회담의 스펙타클(장관)도 목도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리라던가.

김종필 전총리가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피가 하나인” 우리 민족 평화통일의 그 아침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겨주기를 바랬던 필자의 소망은 그가 2018년 6월 23일에 서거함으로 허사가 되었다.. 그는 부인 박영옥여사가 안장되어 있는 충남 부여의 선산에 안장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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