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대출중단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 서민...전세시장 이대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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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출중단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 서민...전세시장 이대로 괜찮나
  • 박영심 기자
  • 승인 2021.08.2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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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출처:뉴스1)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출처:뉴스1)

[코리아포스트 한글판 박영심 기자] 다음달 전세 만기를 앞둔 직장인 A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을 설득해 전셋값을 1억원 올려 재계약하기로 했는데, 주거래 은행인 NH농협은행이 갑작스레 대출을 중단하면서 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대출이 가능한 은행을 알아보고 있지만 원하는 한도와 금리조건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연말 전세 갱신 예정인 B씨도 벌써 걱정이다.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해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할 게 뻔한데, 대출을 중단하는 은행이 늘어나면서 제때 돈을 마련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답답한 마음에 대출이 가능한 은행에 미리 대출금을 확보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대출 옥죄기 여파로 가을 이사 철을 앞둔 실수요자, 특히 세입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 지역 농협 등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잇따라 전세대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창구엔 전세대출 중단 이후 불안해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혹여나 대출중단이 은행권 전반으로 번질까 봐 원래 계약 일정보다 수개월 앞서 대출을 문의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세대출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에 현재 대출이 가능한 신용대출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일주일간 5대 시중은행의 하루 평균 신용대출액은 직전 1주일 전보다 3배 이상 늘었고,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은 40% 이상 증가했다.

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사실상 실수요가 대부분인 대출이라 가을 이사 철을 앞두고 걱정하는 세입자들의 문의가 많다"며 "이번 대출중단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은행도 투자수요도 아닌 무주택 서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주택 구입용 주담대와 신용대출 등을 옥죄면서도 전세대출에는 별다른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대부분이라 규제 시 파급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은행별로 대출 총량을 관리하면서, 그 안에 포함된 전세대출도 규제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임대차 시장은 전셋값이 단기 급등해 세입자들이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버텨내기 힘든 상황이다.

전세의 경우 계약 만기가 있어 세입자들은 2년마다 집주인과 전세보증금을 협의하고 연장 계약(갱신·재계약 등)을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정책 부작용으로 매물부족이 심화하면서 전셋값은 최대 수억원씩 올랐다. 전셋값 상한선을 5% 이내로 제한한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됐지만, 집주인이 우위인 시장이 되면서 상당수가 시세에 맞춰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B부동산 통계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7월만 해도 4억원대(4억8511만원)였으나, 올 7월 6억3483만원으로 1년 만에 1억3562만원(27.2%)이 뛰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억7130만원(37.0%) 올랐다. 2년 전 전세를 계약해 올해 재계약을 맞은 세입자들은 평균 1억7000여만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민들에겐 대출이 아니고선 마련하기 힘든 돈이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정책 실패로 전셋값 올려놓고 돈줄마저 막아버리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이사 날짜가 코앞인데 전세자금 대출까지 틀어막으면 월세로 나가라는 것이냐', '불시에 다른 은행까지 대출중단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 등 불만과 불안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대출중단이 추가로 확산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정보다 앞서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대출 신청 시기를 앞당기라고 조언한다. 전세계약은 보통 잔금 지급일로부터 최대 한 달 전에 대출 승인을 받아놓을 수 있는데, 미리 대출 가능 은행을 확인하고 가급적 빨리 승인을 받아놓으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전세대출의 경우 투기적 이유보다 전셋값 상승으로 인해 대출이 늘어난 이유가 큰 만큼,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대상에서 빼내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 안정과 연관되는 민감한 영역이라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모니터링(감시) 대상에서 분리해 시장 상황에 맞춰 한도를 따로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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