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조선 협력사들, 日 조선소 하청업체로 추락하나
상태바
韓 조선 협력사들, 日 조선소 하청업체로 추락하나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6.07.14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리아포스트 박병욱 기자] 국내 대형 조선소로부터 발주 물량이 격감해 어려움을 겪는 조선 협력사에 일본 조선소가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했던 일본 조선소가 최근 수주한 배를 제 때 건조하려고 선박 블록 제작을 국내 조선 협력사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축적된 노하우와 고급 기술로 성장한 한국 조선 협력사들이 일본 조선소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고성조선해양 전경

        

선박블록 제작공장으로 전환할 예정인 경남 고성군 고성조선해양은 이달 초 일본 미쓰비시중공선박해양과 100억원 규모의 선박 블록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가 일본 조선소와 맺은 첫 계약이다.

회사로선 현재 건조중인 선박 2척을 제외하면 확정물량이 없는 상태에서 '가뭄에 단비'를 만난 셈이다.

지난해 고성조선해양 매출액 2천500억원과 비교하면 이번 계약이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조선소 발주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본 조선소와 블록 공급계약을 텄다는 점에서 사측은 의미를 부여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가 바깥으로 영업을 열심히 한 점도 있지만 일본 조선소 측에서 적극적으로 계약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측은 "추가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품질 좋은 블록을 납기내에 인도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조선 3사 협력업체인 삼강엠앤티(경남 고성군)는 일본 중공업 그룹인 IHI와 주문한 테라(Terra)블록을 지난달 말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일반 선박블록 96개를 합친 테라블록은 전체 선박크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초대형이다.

초대형 블록 조립이 가능한 기술력과 안벽·골리앗 크레인 등 설비를 갖춘 이 회사는 IHI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 선박블록 조립장면

삼강엠앤티 관계자는 "국내 조선소 발주가 예전같지 않는데 일본 물량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삼강엠앤티는 IHI 외에 올들어 미쓰비시로부터도 선박 블록 주문을 받았다.

전남 목포 대불공단에 입주한 조선 협력업체들도 최근 일본 조선소로부터 물량을 받거나 계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조선소가 최근 국내 조선 협력사를 노크하기 시작한 것은 자체 구조조정으로 설비가 축소된 상태에서 최근 선박 수주가 늘어서다.

조선산업 전문가인 박종식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1990년대 이전 정부주도로 두차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했다.

이 때 조선소 대형 도크를 폐쇄하고 숙련 인력들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서 조선산업 규모가 전성기때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일본 조선소들은 자국 해운사들의 발주로 근근히 버텼다.

그러나 2013년 집권한 아베 정권이 엔저 기조를 유지하면서 일본 조선소들이 해외에서 선박 건조 계약을 많이 따냈다.

조선해양분야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IHS 페어플레이'(IHS Fairplay)가 집계한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을 보면 2010년 14%에 불과하던 일본 점유율은 2015년 29%로 갑절 넘게 상승했다.

이 기간 한국 점유율은 36%에서 30%로 줄었다.

박 연구원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면서 동시에 많은 숙련인력(기술·기능직)이 필요한 조선 산업 특성상 설비 축소와 인력감축이 진행되면 이를 단기간에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거친 후 현재 일본 조선협회 소속 조선소 종사 인력은 5만여명, 조선 협력사 인원을 다 합친 전체 조선 인력은 8만여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전체 조선업 인력이 경남 거제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두 곳에서 일하는 조선인력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엔저 효과로 선박 수주가 늘자 설비와 기술·인력이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조선 협력사를 선박 블록 공급처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당장은 조금 숨통이 트이겠지만 국내 조선산업이 어려운 상태에서 일본에서 발주가 계속 이어지면 국내 조선 협력사들이 일본 조선소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어렵더라도 조선 협력사들과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