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칼럼]한국의 전통시장
상태바
[이방인 칼럼]한국의 전통시장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6.11.24 2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리아포스트 김영목 기자]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전통 시장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친절한 아저씨들이 외국인이라고 나를 속이려고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유럽문화권에서 온 사람에게는 아시아 전통시장이 신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시 오고 싶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도 모르게 한국 시장에 대한 나의 감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교통 규칙을 위반해서 인도를 다니는 오토바이도 더 이상 예전처럼 짜증나지도 않고 지저분한 것도 어느새 눈에 잘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런 곳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음식점 덕분에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한국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적이 있다. 만날 장소를 물어봤더니 종로5가에서 만나자고 했다.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다. '서울에 그렇게 많이 유명하지도 않은 동네에서 뭘 하러 만나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종로5가냐'고 물었더니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먹자고 했다.

서울 생활 초기에 서울 구경이나 할 겸 딱 한 번 들렸던 광장시장. 서울에 살면서 이 동네에 갈 일도 별로 없어 그 이후로 다시 가지 않았다. '서울 가이드북’에 ‘한국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통시장’이라고 소개된 정도로만 알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친구들과 가봤더니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으며 여태까지 교과서를 통해서만 봤던 한국의 역사를 내 눈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좁은 시장 골목을 누비면서 왠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오는 한국의 1950년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빈대떡 팬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주 좁고 사람도 많은 공간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면서 종이접시에서 먹은 빈대떡과 막걸리가 정말 맛있었다. 다시 되돌아 생각해 보면 음식 자체가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매우 소박하고 외국인들이 쉽게 꺼릴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한국의 정이라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광장시장은 동대문 시장과 달리 요즘 들어 부분적으로 재건축 되었으나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광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광장시장에 대한 홍보나 정확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서울 전통시장 중에서는 그나마 유명하지만 서울의 주요 관광명소와는 사실 비교가 안 된다. 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충분히 홍보할 만한 동네라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 전통시장의 모습에 놀랐던 또 다른 이유는 러시아에는 전통시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예 시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전통시장과 유사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이나 옷, 생활용품을 파는 시장은 당연히 많고 러시아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통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럴 때는 박물관이나 관광객을 위해 따로 마련된 전통 마을에 가야 한다.

한국 전통시장의 재미는 바로 '전통'이라는 단어에 있다고 본다. 서울 구석 구석에 있는 전통시장들은 한국 역사, 한국 사람들의 옛날 생활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2박3일 일정으로 서울에 오는 관광객들이 이런 서울의 모습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13년 넘게 살아 온 나에게는 이런 시장들이 또 다른 한국의 매력을 엿볼 기회를 준다.

▲글쓴이: 러시아출신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Ilya Belyakov)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