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성지' 서소문역사공원, 구의회 반대로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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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성지' 서소문역사공원, 구의회 반대로 좌초 위기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7.06.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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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영목 기자]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과 그 지하 공간을 역사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서소문역사공원' 사업이 구의회의 반대로 좌초 위기를 맞았다.

17일 서울 중구 등에 따르면 서소문공원은 조선시대 처형장으로 사용됐던 곳으로, 천주교인과 실학자, 개혁 사상가들이 받았던 핍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다.

실제로,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됐다. 이 중 44명은 성인으로 시성됐고, 추가로 25명이 시성될 예정이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 미사에 앞서 이곳을 참배해 전 세계 13억명의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구는 이 같은 배경에서 국비·시비·구비 등 총 574억9천600만원을 들여 공원을 리모델링해 지상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종교적 가치를 담은 역사공원으로, 현재 주차장인 지하 공간은 3분의 2가량 면적을 순교자 추모 등을 위한 기념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2011년 염수정 추기경(당시 서울대교구장)이 최창식 중구청장에게 먼저 제안해 착수됐다. 현재는 중구·서울시·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구의회가 지난 12일 제237회 정례회에서 서소문역사공원에 대한 '구유재산 관리계획안'을 부결하면서 올해 이 사업에 투입될 구 예산 51억7천여만원의 집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관련법에 따르면 10억원 이상 투입해 구 재산을 신축·증축·건축하는 사업은 구의회에서 구유재산 관리계획 심사를 받게 돼 있다. 이 계획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예산 집행도 덩달아 막힌다.

50억원이 넘는 올해 구 예산이 사라지면 공원 공사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구 관계자는 "곧 장마철인데 비가 오면 지하 공사 현장에 물이 차거나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수 있어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공사 현장 유지관리비만 매달 1억원이 넘게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고 토로했다.

또 만약 '파행'이 이어져 사업이 무산된다면 지금까지 이미 들어간 110억원에 달하는 혈세는 공중으로 사라진다. 공원을 공사 전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에도 300억원이 넘게 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서소문역사공원을 중심으로 명동성당·약현성당·당고개성지·새남터성지·절두산성지 등 국내 주요 천주교 성지를 이으려던 구의 '한국 성지 순례길' 사업도 없던 일이 된다.

▲ 사진=서소문역사공원 조감도.(연합뉴스 제공)

구의회가 이미 수백억원대의 국비와 시비까지 확보된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는 구가 지난해 구유재산 관리계획 심의 신청을 제때 못한 점도 한몫을 했다.

구는 당초 서소문역사공원사업 같은 '리모델링'의 경우는 이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곧바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뒤늦게 행정자치부로부터 심의를 받으라는 유권해석을 받자 구의회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둘러싼 과정에서 생긴 양측의 불편한 감정이 '심의 부결'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고 추측한다.

또 평소 구의회가 관심을 두던 '지역 사업'에 구가 협조하지 않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의회가 정치적인 견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구는 구의회로부터 명확한 부결 사유를 듣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구 관계자는 "이른 시일에 구유재산 관리계획이 통과돼 사업이 좌초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구의회를 성심성의껏 설득해 예산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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