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라이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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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주시 부시장 최현덕
  • 승인 2017.06.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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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미식도시, 버릴 것이 없다.

[남양주시 부시장 최현덕] 남쪽으로 한나절을 날았다. 호주 아들레이드 공항에 내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5월 들어 유독 잦았던 먼 데를 바라보는 지긋한 행위였다. 시상(詩想)이 잡혀서가 아니라 미세먼지 탓인데, 이곳의 풍경은 마치 포그 필터를 돌려 뺀 듯 시리도록 선명하게 눈을 찔러온다. 
국제슬로시티 총회가 열리는 굴와(Goolwa)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지평선을 따라 포도주가 스미듯 석양에 젖어간다. 초원과 숲, 야생 캥거루에 대한 로드킬(Road kill) 안전표지 외에 오염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는 대륙 자체가 생태자원의 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에는 인증 받은 230여개의 슬로시티가 있다. 30개 도시에서 시장, 부시장, 주요 관계자 200여명이 이번 총회에 참석했다. 슬로시티에서의 교육, 음식문화, 도시재생에 대한 사례발표가 이어진다. 새로 인증 받은 중국의 도시 관계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양주시는 국제슬로시티 비디오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남양주 슬로라이프를 씨네포엠으로 잘 담아냈다는 평가다. 9월22일에 열리는 2017 남양주 슬로라이프국제대회의 취지와 의미를 기념사에 담아 전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을 보인다. 잔뜩 가져간 안내문과 선물이 동이 나서 가방 하나가 줄었다. 여행 가방은 늘 큰 것을 가지고 간다. 가져갔던 것은 쏟아놓고 돌아올 땐 여행지에서 챙긴 물건과 책자로 채워진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 최현덕 경기 남양주시 부시장(가운데)이 12일 호주 굴와에서 열린 국제슬로시티연맹 총회에서 비디오 콘테스트 최우수상 수상 후 기념촬영

멜번은 세계적인 미식도시로 알려져 있다. 시라즈(Shiras)로 대표되는 호주와인은 비교적 값이 저렴하고 질 좋기로 유명하다. 전통시장 빅토리아 마켓은 온갖 식품과 잡화, 의류가 즐비하다. 취향에 따라 직접 따라 마실 수 있는 거리 와이너리 앞에서 발길이 멈춰진다. 포장지없는 그로서런트 개념과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혼재된 시장거리는 이민자의 땅처럼 여러 인종들로 넘쳐난다. 규모는 작아도 지역의 식재료들로 가득했던 아들레이드의 센트럴 마켓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거리마다 와인과 맥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독특한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정에 없던 발품을 팔아서 찾아간 디그레이브 스트리트(Degrave Street)에서의 노천식사는 미식도시다운 저녁을 기억하게 한다. 서울에서 명소는 섬처럼 떠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갈 수 있다. 이곳은 적당히 위치한 상점들과 아케이드가 거리와 명소를 연결하고 있다. 공원과 조각상, 혹은 오래된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서관이나 성당, 미술관도 도시 간격을 유지하는 요소가 된다. 호주의 이민역사가 고스란히 중첩된 도심에서 오래된 것은 버릴 것이 없어 보인다. 걷고 싶은 거리는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시드니도 예외는 아니다.

▲ 슬로시티 총회

슬로시티 총회가 끝나고 멜번을 거쳐 서둘러 시드니로 향한 이유는 출장 준비과정에서 남양주시에 꼭 필요한 미션 두 가지를 더 가져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도시에 있어서 친환경 스마트시스템 사례를 찾아보자는 것과 남양주시의 핵심사업 중의 하나인 ‘슬로라이프 미식관광 플랫폼’ 프로젝트와 호주 울릉공국립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의 연계사업을 접목해서 상호 교류·협력을 위한 MOU체결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2015년 슬로라이프 국제컨퍼런스에서 공공식정책 기조발표를 했던 호주보건협회장 헤더 예츠만(Heather Yeatman)교수를 만나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선다. 울릉공대학은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박수진팀장이 이미 방문의 취지와 의미를 헤더교수와 지속적으로 협의한 덕에 현지에서의 미팅과 시찰계획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       
지속가능한 건물연구센터(Sustainable Buildings Research Center)는 말 그대로 연구동 자체를 이름에 맞게 설계한 건물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주택, 가전 등 일상에서의 문제를 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연구시스템이 학생들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실험과 연구의 결과를 이 건물 유지에 직접 적용해보는 소박하면서도 실체적인 연구센터다. 숲 속의 또 다른 공간, 어린이교육체험박물관(Early Start Discovery Space)에도 이런 설계 시스템이 일부 적용되고 있다. 호주 유일의 어린이박물관인 이곳의 전시 체험콘텐츠는 3세부터 초등생까지 나이에 따라 구분 되어 있다. 인지능력과 창의적인 활동, 협동을 위한 오감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항구를 끼고 있는 지리, 역사적 특성을 전시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세심한 연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무리한 스토리텔링보다는 실체적이고 체험 이후에 벌어질 아이들의 심리에 초점을 둔 과하지 않은 전시방식이 깊은 인상을 준다.  

슬로라이프 미식관광은 지역자원, 생태자원, 미식자원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 이 사업의 성패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인력과 직업창출에 달려있다. 푸드스타트업 스쿨은 미식관광 플랫폼의 핵심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호주는 블루컬러의 연봉이 대학교수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대학진학률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직업교육 시스템과 일할 기회가 주어짐을 알 수 있다. 대학은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지역과 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울릉공대학교의 교수, 학장, 주요 관계자가 함께한 미팅은 남양주시와 울릉공대학 간에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향후 푸드스타트 업을 위한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교류와 협력을 약속한다.  

▲ 아들레이드 센트럴 마켓

이날 점심은 호주에서 먹은 최고의 식사로 기억된다.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하버(Harbour) 지역 레스토랑은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메뉴에 넣었다. 미식관광자들을 위한 헤더교수의 배려가 돋보인다. 울릉공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생물다양성 푸드 프로젝트와 지속가능성(Biodiversity Food Project and Sustainability) 관련 시설인 그린하우스 파크(Greenhouse Park)시찰에 있다. 신재생에너지 시설과 커뮤니티 가든으로 구성된 이곳은 도시에서 생산되는 재화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민을 작품화 시킨 것처럼 보여 진다. 쓰레기 처리방식에 대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이 공원은 도시 주거지와 산업단지 사이에 색다른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가 난지도를 공원으로 꾸며서 주목받은 적이 있다면, 이곳은 한 발 더 나가서 제3의 공간을 염두에 두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도시텃밭 정도로 상상했던 이더블 가든(Eatable Garden : 먹을 수 있는 식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이더블 정글을 이룬다. 토마토나 바나나같은 일상적인 채소나 과일 외에도 야생초와 아로마, 식재료가 될 수 있는 온갖 식물들로 가득하다. 인근의 3개 도시가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한 이곳에서는 바비큐를 곁들인 지역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놀라운 점은 관리와 계획은 시와 자원봉사들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신도시와 인구집중, 주거 팽창에 따른 도시계획에서 빼지 말아야 할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카툼바 슬로시티 관계자 환담

   일정의 마지막은 호주의 두 번째 슬로시티로 인증받은 카툼바(Katoomba)로 잡았다. 시티총회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집으로 우리 일행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카툼바는 시드니 서쪽 약 100㎞에 위치한 블루마운틴 대협곡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매년 300만명이 찾아온다. 호주의 가정집은 뒤뜰이 매력적이다. 정원은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어떤 가족이 살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은 비록 자녀들이 떠나고 은퇴한 노년의 부부만이 남아 있어서 쓸쓸함은 지울 수 없지만 오랫동안 행복을 간직했던 공간이었음을 그 흔적과 아기자기한 도구들이 이방인의 귀에 대고 속삭여준다. 아마도 대도시에서 떨어진 오래된 일상의 작은 도시들은 마치 이 집과 같은 처지일지도 모른다. 카툼바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환경, 지역문화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발행된 타블로이드판 뉴스레터는 청년세대와 지역 사업체, 자연환경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활력과 에너지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 호주보건협회장 헤더 예츠만 (Heather Yeatman) 교수님 (가운데)과 함께

작은 빵가게의 냄새, 손으로 만든 레이스, 커피를 볶는 통에서 떼지 못하는 눈, 카메라의 렌즈를 닦는 접힌 천 조각, 낡은 등산화, 지역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동네의 작은 소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철지난 노랫소리가 그 어떤 신곡보다 신선하게 메아리친다. 이제 남양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슬로라이프 여행의 끝은 남양주에서 시작된 슬로라이프 미식관광 플랫폼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가는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보헤미안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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