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매력적인 악인' 리처드 3세에 빠진 연극계
상태바
'가장 매력적인 악인' 리처드 3세에 빠진 연극계
  • 김영목 기자
  • 승인 2018.06.16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리아포스트 한글판 김영목 기자] 영국 요크 왕조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1452∼1485)는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가장 매력적인 악인으로 손꼽힌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리처드 3세는 곱사등이에다 절름발이로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모사꾼으로 그려진다.

그는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 사이의 권력투쟁인 장미전쟁이 발발하자 천재적인 지략으로 형 에드워드 4세를 왕위에 올리지만, 흉측한 외모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천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주변 인물을 모두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러나 그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궁정 여인들을 유혹하고 때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다층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셰익스피어 시대부터 관객들은 입체적인 매력을 뽐내는 그에게 빠져들었고,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함께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작품이 됐다.

올해 한국 연극계도 리처드 3세에게 푹 빠진 모습이다. 지난 2월 '천만 배우' 황정민이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리처드 3세'를 택해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어 LG아트센터는 14∼17일 독일 연극의 거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리처드 3세'를 초청했고, 국립극단은 29일부터 7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프랑스 연출가 장 랑베르-빌드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리처드 3세'를 소개한다.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 국립극단 등 우리나라를 하는 대형 극장·극단이 연이어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 현대 실험극 가미한 오스터마이어作 '리처드 3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는 1999년 31세에 현대 실험 연극 중심지 역할을 하는 샤우뷔네 베를린 예술감독으로 전격 기용됐으며, 2002년 초연한 '인형의 집-노라'는 유럽 연극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년간 현대 실험극 선봉에 선 거장답게 그는 셰익스피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대사는 셰익스피어 원전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했지만, 무대와 의상, 음향 등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무대는 셰익스피어 시대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반원형으로 제작했지만, 중세 궁정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 장식 대신 황량한 모래 바닥과 2층 가건물만 있을 뿐이다.

▲ 사진=LG아트센터 '리처드 3세'와 국립극단 '리처드 3세'.(G아트센터, 국립극단 제공)

출연진 역시 영국 왕가의 고전적인 복식이 아닌 무채색 정장 차림으로 무대와 객석을 누비고, 강렬한 드럼 비트가 긴장을 고조한다.

1999년부터 샤우뷔네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며 오스터마이어와 호흡을 맞춘 주연배우 라르스 아이딩어는 '리처드 3세'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는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려는 음흉한 괴물의 목소리를 읊조리는가 하면, 달콤한 목소리로 여인을 유혹한다. 때로는 무대 전면의 자막 스크린을 가리키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기 발을 묶고 정육점 고깃덩이처럼 알몸으로 천장에 매달리는 피날레 장면은 좌중을 압도한다.

오스터마이어는 "리처드 3세는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허무주의자에 가깝다"며 "그가 단지 광인에 불과했다면 말이나 존재감만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한 장 랑베르-빌드의 '리처드 3세'
국립극단이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장 랑베르-빌드의 '리처드 3세'는 원작을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했다.

2016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이 작품에서 장 랑베르-빌드는 등장인물만 40여 명에 달하는 원작의 서사를 단 2명의 배우가 풀어나가며 프랑스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처드 3세'의 고전적인 해석이 인물의 악행과 비극에 집중하는 것이었다면 장 랑베르-빌드는 광대극 특유의 유머를 녹여냈다.

그러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는 어릿광대 모습은 오히려 '리처드 3세'의 잔혹함과 양면성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한다.

원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와도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각색, 연출, 배우를 겸한 장 랑베르-빌드는 자신을 '리처드 3세'라고 여기는 광대 역을 맡는다. 다른 1명의 출연자인 로르 올프는 '리처드 3세'와 엮이는 여인들과 '리처드 3세'의 수족들을 연기한다.

로르 올프는 무대에 등장한 후 쉴 새 없이 의상과 분장을 교체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2016년 프랑스 초연 이후 프랑스 전역과 일본에서 공연됐으며 이번 내한 공연이 두 번째 해외 공연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